[퍼온글] 딴지일보 - 한명숙을 만나다 (II)

한명숙을 만나다 (II)
(딴지일보 / 딴지총수, 한명숙 / 2009-11-09)


거인 둘이 스러졌다. 그리고 이명박은 건재하다. 상실감과 무력감, 상당하다. 이제는 그들 없이 다시 시작해야 하는 거다. 그러나 다행이다. 처음부터 다시는 아니다. 두 거인은 유산을 남겼다. 바로 거기서부터, 하면 되는 거다. 본지는 이제부터 그 유산들을 추스르고 정리하고 그리고 거기서부터 어떻게 앞으로 나아가야 할지, 그 이야기를 시작하려 한다. 이 인터뷰 시리즈는 그 첫 번째 시도다.

지난 이너뷰에 이어 한명숙 전 총리를 다시 한 번 만났다. 그녀를 통해 이야기를 시작하기로 한 건, 그녀가 노무현이 남기고 간 사람들의 ‘엄마’이기 때문이다. 다치고 지쳤을 때는 ‘엄마’가 필요한 법이다.

두 번째 이너뷰 역시 그녀 남편이 운영하는 길담서원에서, 10월 29일(목) 오후 2시, 두 명의 보좌진이 배석한 가운데 이뤄졌다.


길담서원


한 : 차 드릴까요? 커피 안 하시면 이런 거 하세요. 연 잎차. 내가 이거 통도사에서 직접 스님이 만든 거 가져온 건데..

총 : 전 카푸치노로 할게요. (웃음) 처음 인터뷰한 거 보셨어요?

한 : 예

총 : 재미있던가요? (웃음)

한 : 빨개 벗겨져서;;(웃음) 재미있었어요.

총 : 어느 대목이 제일 재미있으셨어요?

한 : 아휴~ 뭐.. 다.

이미 서로에 대한 간은 지난 시간에 충분히 봤다. 더구나 재보궐 선거 바로 다음 날.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총 : 양산에 많이 내려가셨다고 하더라고요?

한 : 네. 3번 갔어요. ‘앞으로는 경상도도 해볼만하구나’ 이렇게 느꼈어요.

총 : 구체적으로 예를 들어서?

한 : 우선은 사람들이 저를 만나면 노무현 대통령 서거가 연상이 되는가 봐요. 제 손을 붙드는 순간에 눈물을 글썽이는 사람이 너무너무 많았고요. 우는 사람들도 있었고요. 그리고 ‘봉하에 갔었어요.’ 이런 사람들이 참 많았는데.. 나중에 자료를 찾아보니까 봉하마을에 갔던 사람들이 한 수 만 명이 됐다고 해요.

총 : 그 지역에서요?

한 : 네, 그 지역에서. 양산에서. 그런 게 있었고.. ‘노무현 대통령 가시면서 많은 사람들을 깨운 것만은 사실이다’ 이런 걸 느꼈어요. 하여튼 좀 이렇게.. 각성을 하게 하고.. ‘깨웠다’ 이런 생각을 하게하고.. 이번에 보궐선거에서는 양산이 가장 높았을 거예요. 투표율이?

총 : 18대 총선보다 높았다고 하더라고요.

한 : 사십 몇%.. (옆에서 : 43.9%) 그러니까 44% 가까이 됐거든요? 젊은 부부들이, 젊은이들이 많이 나오고.. 4% 정도로 졌는데.. 그렇게 지명도 없는 후보가 한나라당의 대표를 대적해서 그것도 경상남도에서 4%로 추격했다는 건 ‘앞으로 희망이 있다’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총 : 어젯밤엔 어디 계셨어요?

한 : 어디 있었냐고요? 어젯밤에 집에 있었죠.(웃음)

총 : 당사에 안 가시고요?

한 : 제가 왜 당사에 갑니까. 현역도 아닌데.. 만약 졌으면 갔을 거예요. 졌으면 위로하러, 격려하러. 근데 이겼으니까 이기는 기쁨은 다른 사람이 다 만끽해도 되잖아요. 저는 빠져도. 하하

총 : 하하하. 왜요?

한 : 저는 좀 그래요.

이 태도. 좋은 것 앞에서, 더구나 그 일부가 마땅히 그녀의 것일 때조차 나서서 자신의 몫을 주장하지 않는 이 태도는 단순히 그녀 품성이 아니라 그녀의 정치, 그 자체를 상징한다. 

총 : 사실... 노무현 대통령 생전에도 달성 못한 성과죠. 그 지역에서..

한 : 예 그렇죠.

총 : 그래도 4%는 못 넘었어요. 결국. 그건 어디서 오는 걸까요?

한 : 우리는 기본 뿌리 조직이 없어요. 경상도는. 상대는 관 조직이나 그 쪽의 여러 가지 노인 조직, 부녀 조직 이런 기본 뿌리 조직들이 있잖아요. 그런 조직 기반 때문에 그랬을 거예요. 그러나 바람은 확실히 불었어요.

총 : 송인배 전비서관, 18대에서도 나왔었죠?

한 : 두 번 나왔어요. 이번에 세 번째 나온 거예요. 

총 : 아~ 17대에서도 나왔었나요? 아, 맞다. 7%인가.. 4등인가 하지 않았었나요?

한 : 한 번은 선전을 하고...  지난 번에는 많이 떨어지고요.

총 : 그렇죠. 한나라당 후보, 그리고 친박, 민주노동당한테도 졌잖아요. 그때와 비교하자면 약진한 건 확실하네요?

한 : 예예. 약진은 했는데.. 제가 마지막 날 가서 차를 타고 유시민 장관, 안희정, 김두관 장관 그리고 저 이렇게 넷이서 쫙 차를 타고 시내를 누볐어요. 투표를 호소하고 송인배 부탁하고.. 그런데 “한명숙 왔다” 그럼 지나가는 차들도 다 화답을 하고. 상당히 반응이 고무적이어서. ‘야~ 이거 이변이 일어날 수도 있겠다.’ 이런 생각을 했거든요.

총 : ‘현장에서 특히 한명숙 전 총리가 등장했을 때 가장 반응이 좋았다’라고 선대본부장 정윤재 전비서관인가 말을 했던데.

한 : 저도 그랬다고 들었는데 그게 아마 노무현 대통령 가신 후에 이제 여러 가지 상황과 겹쳐서 저를 볼 때 사람들이 노무현 대통령을 연상하게 된 것 같고. 그리고 전국 지명도를 가진 사람이 사실 많질 않잖아요. 국회의원도 자기 지역구는 있어도 전국적으로 알려진 사람이 많이 없고. 근데 전국 지명도가 좀 있다 보니 우선 보면 반가운, 그런 효과가 컸던 것 같아요.

실제로 양산에서 그녀 인기는 상상 이상이었다. 함께 동행 했던 유시민, 안희정 등이 놀랄 정도로. 유세에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다가도 그녀가 마이크를 들면 걸어가던 사람이 걸음을 멈추고 심지어 지나가던 차가 정지해 그녀 주변으로 사람들이 몰려들었다고 한다.

총 : 전국적 지명도 가진 유명인이란 이유 때문만으론.. 그래서 정치인들이 연예인들 자꾸 동행하는 거지만.. 총리님 경우는 좀 다른 것이, 유명 연예인들 손 붙들고 울진 않잖아요? (웃음)

한 : 그래서 저도 놀랐죠.

총 : 사람들이 유시민을 보고 노무현을 떠올려 운 게 아니라 한명숙을 보고 노무현을 떠올려 운다는 거...

역시 엄마가 필요하다.

한 : 아니 뭐 그러니까.. 당연히 유시민도 인기가 좋았고요. 특히 젊은 층에게. 저를 붙들고는 ‘잘 부탁해요. 뒤를 잘 부탁해요’ 이런 뜻으로 ‘한 총리가 있어서 든든해요’라든지.. 그런 이야기를 많이 했어요. 제가 장의위원장을 하면서 대통령을 연상하게 되니까. 사람들이... 가슴에 맺힌 게 많았던 것 같아요. 무조건 반사적으로 손을 팍 잡더니 눈물부터 핑 돌아요. 많은 사람들이 그랬어요. 여기(가슴)에 맺힌 게..

총 : 또 우셨겠네요.

한 : 네. 핑 돌면 저도 핑 돌죠. 그랬어요.

총 : 근데 그 말씀하신대로 유시민, 안희정 다 갔는데, 선대 공동위원장은 문재인 비서실장이었잖아요. 근데 실제 유세 활동은 안 하셨죠?

한 : 사람들에게 노출되는 그런 유세는 일체 안했어요. 본인이 정해놓은 하나의 철칙인 것 같아요.

총 : 그럼 선대위 공동위원장을 하지 말던가. (웃음)

한 : 너무너무 선대위원장을 해달라고 압박하고 졸라서. 거기까지는 수락을 했는데. 뒤에서 많이 도왔어요. 불교계 돌면서 만난다든지, 작은 모임 만나는 것들.. 그런 것들을 했는데. 언론에 노출될 가능성이 있는 외부 모임은 일체 안 했어요. 그리고 민주당이 거기서 최고위원 회의를 했거든요. 거기서도 실내에서는 참석했어요. 그리고 우리 다 실외로 나왔는데... 그 때 안 나오셨죠. (웃음)

총 : 그 분이 양산 사시지 않아요?

한 : 네. 양산 사세요.

총 : 본인 사시는 동네잖아요.

한 : 네. 유권자에요. 하하

총 : 본인 동네인데도 안 나오셨군요.

한 : 그러니까 문재인 실장을 어떻게 인식을 해야 하냐면.. 사람들은 ‘그게 좀 이상하다’  고 그러는데.. 하여튼 선출, 선거 하는 정치에는 개입을 안 하시려고 해요. 자신의 인생과 삶을 설계하는데 딱 선을 긋고 있기 때문에 그걸 강요할 수 없어요.

총 : 부산 시장 얘기가 많았는데. 부산 시장 나가시려면 부산시로 주소를 옮기셔야 하잖아요? 안 옮기시는 거죠?

한 : 부산시장 안 나오신다는 거죠.

총 : 선거 6월전인가요 주소 옮겨야 하는 게..

한 : 주소는 3개월 전에 옮기는 걸로 아는데? (옆에서 : 광역의 경우 60일 이상 거주입니다.)

총 : 아, 기회가 있구나, 아직은.

한 : 근데 그게 문제가 아니라 본인이 ‘정치는 안 한다’ 하는 것이.. 전에 ‘부산시장 나가라’고 노무현 대통령께서 여러 번 권유 하셨는데 안 나가신 걸로 알고 있거든요.

총 : 그 때랑 상황이 다르잖아요.

한 : (웃음) 하지만 그렇게 됐어요.

총 : 특별한 조건 형성 되면 할 수도 있다. 아님 그래도 할 수 없다 인가요?

한 : 아무도 모르죠. 본인만 알죠.

총 : 본인은 절대로 안한다는 겁니까?

한 : 안하시겠다는 것이. 부산시장을 안하겠다는 것보다 정치 일반을 안 하겠다.

총 : 그럼 대통령이 되어서 날 뽑아 달라.. 정무직에.(웃음)

한 : 아니 뭐. 청와대 일도 본인이 하고 싶어서 들어 가셨다 기 보다는 대통령 돕는 일이니까. 할 수 없이 하신 거죠.

원래부터 리스트에 있긴 했지만, 문재인 실장, 꼭 인터뷰 해야겠다. 여기서부터 본격적으로 친노진영의 미래에 대해 묻기 시작했다.

총 : 이번에 민주당 소속 되어 있는 총리님뿐만 아니라 유시민 장관이라든가.. 자기가 앞으로 행보를 어떻게 할 것인지 상관없이 다 양산에 갔잖아요?

한 : 그쵸. 그런 거 상관없이 다 갔어요. 그런 거 상관없이 다 지원을 했죠.

총 : 그러면 혹시 이게 앞으로 만들어질 신당하고 민주당의 협력 모델 사례가 될 수 있을까요?

한 : 전 될 수 있다고 봐요.

총 : 당선시켜야 하는 특정 인사가 있다면 신당 소속이든 민주당 소속이든 당적을 갖고 있지 않던, 이해찬 전 총리처럼, 모조리 가서 유세를 해주고 이런 모델이 될 수 있다?

한 : 네, 있죠.

총 : 근데 실제 정당이 되고 나면 당연히 지방선거 후보를 내야하잖아요. 내겠죠, 아마. 전국 정당을 지향하니까 전국적으로 낼 텐데.

한 : 아직까지 당이 만들어 진건 아니고 당이 만들어지면 그 안에서 구체적인 계획이 나오겠죠. 그러나 아직 안 됐으나... 옆에서 들을 때는 지방선거 후보는... ‘수도권은 내지 않는다.’ 이런 원칙을 세워놓고 있는 것 같아요. 그렇게 세워놓고 있는 걸로 아는데. 그것도 나중에 어떻게 될지는 모르지만. 실제로 ‘신당이 분열이냐, 아니냐’ 이런 화두가 나오고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그걸 그렇게 딱 이분화 시켜서 ‘분열이다, 아니다’ 이렇게 하는 것 보다는 앞으로의 정말 중요한 화두는 통합과 연대에요. 

그런데 통합이 원활하게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에는 어떤 기준을 가지고 연대를 해야 하는 거죠. 그 연대라는 건 신당과 민주당이 함께 할 수도 있고, 시민사회가 같이 할 수도 있고, 그리고 야4당도 서로 기준이 맞으면 할 수도 있는데. 그러한 연대가 정말 우리의 생존의 길이라고 인식을 하고.. 그리고 어떤 협상이 잘 이루어져서 연대만 잘 된다면, 저는 꼭 신당을 만드는 것이 분열이다 할 필요는 없다 생각하는 거죠.

총 : 말씀은 이해 가는데요. 협력하면 시너지가 나지 않겠느냐, 소속이 같을 필요는 없다. 그런데 지자체 후보를 내야하는데 인물은 한정되어 있다. 어딘가 소속은 되야겠고. 그럼 당연히 공천 갈등이 생길 테고...

한 : 그렇죠. 그러니까 연대, 선거연합이나.. 쉬운 일이 아니에요. 이번에도 그 문제가 많이 대두가 됐죠. 안산의 경우도 결렬이 됐고. 양산도 추진은 했으나 서로 조건이 맞지를 않았기 때문에 안 된 거죠. 소위 선거연합이나 단일화나 이런 움직임들이 서로 이해관계가 첨예하기 때문에. 당의 이해관계, 후보자의 이해관계 같은 것들이 이게 중첩되어 있어서 그걸 조정하는 것이 절대 쉬운 일이 아니에요.

그런데 ‘연대를 하지 않으면 다 죽는다.’ 그리고 ‘현 정권에게 모든 것을 다 빼앗긴다.’는 위기의식이 지금 계속 고조되어 오고 있기 때문에 기준을 아주 합리적으로 세워서 민주당도 양보 할 때는 대폭 양보 하고 신당도 물러나야 할 땐 물러나고. 이런 하나의 하모니라고 할까요. 조정을 해낼 수 있어야 한다고 보는 거죠.

총 : 말씀은 알겠는데.. 문제는 그게 가능할까 인데?

한 : 저는 조정 역할을 하고 싶어요. 제가..

친노진영의 미래와 관련해 그녀가 그녀 스스로에게 부여한 임무, 조정. 그게 과연 어떻게 가능할 것인가..

총 : 갈등이 당연히 생기겠죠. 인물은 한정되어 있고. 그 인물이 신당으로 나오느냐, 민주당으로 나오느냐부터. 그럴 때 중재를 하신다면 어떤 기준으로 중재를 하시려고요?

한 : 그 기준은 토론을 해야 합니다. 하하. 그 기준을 여기서 이야기 할 순 없고. 서로 당끼리 하나의 네트워크를 만들어 가지고. 저는 이제 보궐선거가 끝났기 때문에 이제 그 작업에 들어가야 한다고 봐요. 그래서 '희망과 대안'이었던가요? 박원순, 백낙청 선생이 하셨던. 방해 받아 못했던?

총 : 어버이연합회가..

한 : 어버이연합회 이던가요?

총 : 방해한 곳이. 저도 카페 회원입니다. 뭐 하는 곳인지 들어가 봤더니 실제 활동회원은 없고 다들 욕하려고 가입해 있더라고요. 하하. 하도 궁금해서 어떤 사람들인가 싶어 가입했는데 회원이.. 500명 정도인데 다들 욕만 하더군요. 하하. 저같은 사람들밖에 없었던 거죠. 실제 활동하는 일반 어버이연합회 회원은 없더군요. 그런데 사람들을 어떻게 모아서 일하는 건지.. 뭐 돈으로 동원하겠죠. 어쨌든 거기서 방해했었죠. (웃음)

한 : (웃음) 박원순 변호사는 정치권과 시민사회단체가 앞으로 연합을 하는 그런 네트워크를 제안하려고 한 걸로 아는데, 그 날 무산되어서..

총 : 행사만 무산 된 거니까..

한 : 이제 보궐선거가 끝났기 때문에. 민주당도 내부에 혁신위원회가 있어요. 김원기 의장님이 맡고 계시는데.. 그래서 내부적인 혁신을 하면서 통합의 줄을 잡아당길 겁니다. 그리고 '시민주권모임'도 있고 그리고 또 재야 어른들이 만드신 '시민행동'도 있고 이런 여러 가지 틀들이 있기 때문에 이런 틀을 중심으로 해서 시민사회단체와 정치권의 네트워크 기준도 만들어내고, 지자체에 대한 대응 방향을 저는 이제부터 논의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총 : 민주당 있죠, 신당 만들어지죠. 시민주권모임 있죠. 시민단체의 '희망과 대안' 있죠. '시민행동' 있죠. 그리고 진보신당 있고, 민노당 있고. 크게 보면 같은 편일 수 있고, 쪼개 보면 다 자기 정치적 이해가 걸려 있는데 이게 어떻게 중재가 될까요?

구체적으로 이야기 해보면요. 신당 만들어지면 유시민 장관이 합류한다고 하던데. 아마 하겠죠. 시기야 왔다 갔다 해도. 그리고 바로 내년 6월 지방선거인데. 유시민 전 장관 지명도면 서울시장이나 경기도지사나 그 정도겠죠. 무엇보다 신당 쪽에서 그게 필요하겠고. 만약 유시민 서울시장이다. 민주당에서도 누구 한 명.. 한명숙 총리님 하신다고 하고. 시민단체에서는 박원순, 진보 쪽에서 노회찬. 이걸 어떻게 중재 합니까?

한 : 그러니까 제 생각에는 구체적으로 사람 이름을 거론하셨는데. 그 사람들이 ‘반드시 내가 해야 한다’는 생각을 버려야 해요.

총 : 안 버릴 것 같아요. 총리님만 버릴 것 같은데.. 하하

한 : 버려야 하고, 버릴 수 있는 사람들이라고 생각이 들어요. 그리고 우리가 이제 어떻게 네트워크를 구성할 지는 아직 확실히 감이 안 잡히나, 네트워크 구성 돼서 사람을 보고 결정하는 게 아니라 기준을, 원칙을 정해야 해요. 정책에 대한 기준도 정해야 하고. 지금 시간이 없기 때문에 빨리빨리 협상을 해가지고 연대를 해야 한다는 힘이 형성되어야 하거든요? 그 힘을 따를 수 있는, 하나의 권위를 가질 수 있는 무엇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야지 그냥 ‘당신 양보하시오’ 이런 건 어렵다고 보고요.

한 줄로 이렇다. 네트워크 구성해 기준과 원칙을 정하고 협상을 해 연대기구를 만든다. 사실 그 수밖에 없다. 문제는 각 주체가 만족하고 동의할 만한 보편 기준을 과연 만들 수 있겠는가. 개인적으로는, 대단히, 어렵다 본다.  일개 가족회의도 모두를 만족시키기란 어려운 법이다. 

총 : 그 권위, 시민주권모임이 역할 할 수 있을까요?

한 : 시민주권모임도 그 중에 하나죠. 중요한 모임 중에 하나죠.

총 : 그러면 예를 들어서.. 실제 그럴 가능성이 있어서요.. 유시민, 노회찬, 한명숙, 박원순, 이렇게 후보진이 구성 됐어요. 그 중 본인 생각으론 누가 되어야 하는 겁니까?

한 : 그 기준에 맞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죠. 그러니까 그 기준을 정해야 한다는 거죠.

총 : 하하. 답을 해주셔야 재미있는데. 사람에 대한 호불호를 떠나.. 뭐 정책도 맞아야 하고 정치적, 전략적 판단을 다 하셔야 할 테지만.. 이 사람이 정치적 사후를 생각하고 대선을 생각하고 시민사회단체 참여도를 생각하고 할 때 좋겠다..

한 : 저는 당선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당선이 되기만 한다면 난 누가 해도 좋다고 봅니다.

총 : 그럼 다 당선될 가능성이 있다면.

한 : 누가 해도 좋다니깐요.(웃음)

총 : 1등을 뽑는 다면요. 본인 생각에.

한 : 그야 모르죠. 그건 해봐야 알죠.(웃음)

총 : 예를 들어 상대방이 현 서울시장 오세훈 하고 여론조사 해봐도 다 이겨요. 가상 대결을 붙여 봐도.. 누가 나와도 된다 이거죠.

한 : 근데 그건 현실적이지 않아요. 정치는 가상으로 이야기하는 것은 금물입니다.(웃음)

총 : 혹시 비슷비슷하면 본인이 나갈 생각 있으세요?

한 : 저는 어떻게 생각하고 있느냐면.. 이번 지자체에서 반드시 이겨야 한다는 하나의 원칙이 있는 거죠. 그 원칙이 있기 때문에 그 원칙의 기준이 마련이 되면 ‘박원순이 가장 가능하다’ 그러면 박원순이 돼도 좋고, ‘유시민이 가장 가능하다’ ‘한명숙이 가능하다’ ‘노회찬이 가능하다’ 그 중 누가 돼도 한나라당이 하고 있는 저런 토목공사 대한민국을 만들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총 : 인간적인 호감은 누구에게 있으십니까?

한 : 인간적 호감이라기보다 능력의 문제 같은데요?

총 : 그럼 능력은 누가 가장 있다고 보세요? 서울시장 한다면 누가 가장 잘 할 것 같으세요?

한 : 잘 모르겠어요. 하하하

총 : 이렇게 좁혀 보죠. 1번 본인, 2번 박원순. 정치인이면 권력의지도 있어야 하잖아요. 내가 잘 할 수 있는데 일부러 양보할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

어떻게든 확인해보고 싶었다. 그녀의 권력의지를.

한 : 저는요. 메이커가 되고 싶은 사람이에요.

총 : 본인이 직접 하시는 거 말고요? 본인이 더 잘 할 수 있는 걸 못하는 남을 시키면 어떡합니까?

한 : 저는 좀 더 후배들이 하는 걸 원해요.

총 : 왜요?

한 : 저는 이미 많은 것을 했기 때문에 후배들이 하는 걸 더 원하죠.

총 : 근데 이게 사적 선후배 관계라면 애틋한 후배 사랑으로 이해해 줄 수 있지만, 나라 일을 누가 더 잘 수행할 것인가 하는 일이지, 내가 많이 누렸으니까 후배에게 준다  차원이 아니잖아요?

한 : 저는 이제 만들어 나가고, 조정하고, 진보세력이 뿌리를 내려서 자기 자리를 만들어 나가게 할 역할은, ‘내가 뭐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버린 사람만이 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근데 정치인은 다 ‘내가 해야 한다’고 주장하기 때문에 저는 그런 역할이 할 사람이 필요하다고 보고, 그런 역할을 하는 것이 뭐가 되려고 하는 것보다 덜 중요하지 않다.. 그렇게 보는 거죠.

그녀의 정치관의 엑기스다.

총 : 그런데 중개업자가 집 팔 생각 없으면 중개업자를 하면 안 되는 거거든요? 그게 직업의 속성인데.. 정치인이 정치 할 생각 없으면 정치인하면 안 되는 거잖아요?

한 : 그것도 정치라니깐요. 저는 어떻게 보냐면.. 누군가는 정치를 좀 더 멀리보고 정치를 장기적으로 보면서 정말 시민들이 깨어있도록 하는, 그런 뿌리를 내릴 수 있는 다양한 일들이 있어요. 차세대 정치 교육 문제 이런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하거든요.

총 : 본인의 당선 가능성이 제일 높아도 안 하신다는 이야기 인가요?

한 : 글쎄.. 모르겠어요. 저는 제가 당선 가능성이 제일 높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총 : 만약 높다면.. 그럴 수 있지 않습니까?

한 : 왜 자꾸 if 를..

총 : 정치는 살아 움직이니까 사람들이 지지하고 정당에서도 가장 적합한 후보로 생각하고, 지지도도 가장 높다 해도 안 하실 거냐고요.

한 : 현재는 할 생각이 없어요.

총 : 그렇게 된다 해도?

한 : 네. 장기적 안목에서 제 역할을 위치시켜 놓았기 때문에 앞에 오는 ‘선거에 출마하느냐 안 하느냐’ 보다 더 중요한 일을 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에.

총 : 본인의 소임을 그렇게 정하신거에요?

한 : 네. 그런 일을 생각하고 고민하고 공부하고 실천하는 사람이 없기 때문에 지금 우리가 이 모양 이 꼴이에요. 그러니까 연대하고 통합하는 경험도 없고, 차세대를 꾸준하게 공부를 시키고 차세대 정치 교육을 통해서 정치 진실이 뭔지. 우리가 어떤 상황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이렇게 나가야 한다는 어떤 국민적 뿌리라고 할까. 그런 것이 없는 거예요.

그러니까 과대포장해서 선전하면 휙 쓰러지고. 그리고 분노를 느끼다가도 금방 잊어버리고, 역사 인식이 없고. 그게 민도가 낮은 거거든요. 우리나라 민도의 뿌리를 내리는 역할을 하고 싶은 거죠. 이걸 생각하는 사람이 없어요. 그래서 저는 제가 40대다 50대다 그러면 좀 현실 정치에 도전하는 쪽으로 방향을 기울었을 수도 있어요. 근데 제가 수많은 경험들을 했기 때문에, 중요한 경험들을 바탕으로 해서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들을 규합을 해서 뭔가 그런 일을 하고 싶죠.

그래서 제가 지금 노무현 재단에서 가장 관심 있는 것도 노무현 스쿨이에요. 노무현의 정치 교육을 어떻게 장기화시켜서 우리나라가 방향을 잃지 않고 바르게 갈 수 있느냐. 민주주의도 그렇고, 경제도 그렇고, 모든 문제가 그렇습니다. 환경은 사실 생존인데 환경을 액세서리 정도로 생각하고 있거든요. 한쪽에서는 천민자본주의, 예를 들어서 토목 공사. 지방의 토호들, 지방 언론들 이런 사람들이 합쳐서 만드는 작품들.. 특수한 사람에게만 이익을 나눠 주는 개발 발전이죠. 그 전에는 개발독재라고 얘기를 했잖아요.

그런 식의 프로젝트를 중심으로 해서 경제도 움직이고 모든 것이 움직인다고 했을 때 그것을 꿰뚫어 볼 수 있는 판단력을 가진 민도가 필요하다는 거예요. 근데 그 것을 아무도 안하고... 사실 정당에서 해야 하는데 정당도 정신없죠. 우리 같은 정치인들도 참 딱 한 것이 책 한 권 제대로 못 읽어요. 그러니까 신문이나 훑고 있는... 그 정도에서 일을 하기 때문에 비전도 제시 못하는 거예요. 철학도 없고. 그래서 저는 전문성과 철학과 비전을 제시하면서 특히 젊은이들의 또는 4·50대나 어르신들이 판단 능력을 가질 수 있는 민도가 필요하다 그렇게 생각이 드는 거죠.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을 거의 찾을 수 없어요. 정치를 하면서. ‘이게 내 몫이구나’하는 생각이 드는 거죠.

총 : 그래도 본인만을 원할 땐 본인이 나갈 수도 있는 거죠? 사람들이 총리님만을 원한다.

한 : 아마 그렇지는 않을 거예요.

총 : 그럼 이것만 다시 한 번 답해주세요. 유시민, 노회찬, 박원순 중에는 누가 제일 낫나요? 서울시장 하면? (웃음)

한 : 제가 그런 걸 어떻게 이야기 합니까?(웃음)

총 : 그냥 본인의 생각.

한 : 내 생각에는 우리가 잘 준비를 하고 국민들에게... 저는 이렇게 생각해요. 복지 서울. 그런 비전을 제시하면서 그 중 누구든지 깃발을 들면 저는 얼마든지 승리의 승산이 있다고 보죠.

총 : 유시민이 낫나요, 박원순이 낫나요? 두 명으로 줄여 이야기 하면?(웃음)

한 : 아주 그냥 섹시한 답을 얻으려고.(웃음) 생각해 보질 않았어요. 사실은.

총 : 그럼 이번 기회에 잠깐 생각해 보시죠. 기다리겠습니다. (옆에서 : 헌재에서 위법 판결났답니다.)

총 : 아 그래요? 아닐 줄 알았는데.

한 : 이거 뭐.. 아이고 잘 됐네.

총 : 몇 대 몇 으로요? (옆에서 : 신문법, 방송법 가결된 것은 위법이다.)

총 : 그랬다면 아마 쪽팔려서겠죠. 

한 : 국민들이 다 봤는데. 그걸 아니라고 하기는..

헌재 판결 앞 부분만 듣고 그렇게 알아들었던 게다. 누가 들어도 앞 부분은 그렇게 알아들을 수밖에 없는 내용이었으니까. 비겁한 헌재.

총 : 담배 한 대 피고 올까요? 유시민, 박원순 생각해보시겠습니까? (웃음)

한 : 아니, 그건 모르겠어.

총 : 생각 안 해보셨다고 하길래... 그 사이에 생각하시라고..

한 : 담배 한 대 피고 오세요. (웃음)

왜 답을 못 하는 지는 물론 안다. 하지만 굳이 끝까지 답을 듣고 싶었다. 원만하고 자상하며 희생적인 한명숙이 아니라, 호오 명확하고 자기주장 분명하며 정치적인 한명숙, 그런 그녀가 보고 싶었다.

그래서 이너뷰 최초로 도중에 생각하실 시간 드리기 위해 담배 피고 오겠단 생뚱맞은 소리까지 해가며 묻고 묻고 또 물었다.  

총 : (돌아와서) 총리님 이제 답변해주셔야죠.(웃음)

한 : 누가 이기나 볼까요?(웃음)

총 : 좋습니다. 이건 나중에 또 하죠. (웃음) 유시민 전 장관은 신당 갈 것 같은데.. 이게 무슨 명분을 붙이든 대중에겐 흩어진 것처럼 보여요. 국민참여당 반대하는 사람들이 많아도 접을 생각이 없는 것 같고.

한 : 없는 게 아니라 이미 가고 있어요.

총 : 결국 민주당 있고, 신당 있고, 시민주권모임 있고 이렇게 세 가지 틀로 노무현을 잇는다는 적자들이 갈라진 모양새가 된단 말이죠. 총리님은 중재 역할을 하신다고 했는데.. 구체적인 그림을 좀 그려주세요. 어떻게 하실까요? 지자체, 총선, 대선을 구체적 예를 들어서.

한 : 그건 제 머릿속에서만 나오는 건 아니에요. 어느 쪽에 속해있는 사람이어도 다 우리가 정권을 재창출 해내야 하고 지자체에서 이겨야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으면서 위기의식이 고조되어 있거든요. 위기의식 자체가 연대를 해야 한다는 당위성으로 연결이 되는 거죠.

총 : 저도 거기까지는 갈 것 같아요. 당위.

한 : 네, 가는데.. 민주당이 지금 굉장히 중요하다고 봐요. 민주당이 얼마나 대문을 열고 넓은 자세로 수용할 것은 수용하고, 제일 큰 형님 같은 당이기 때문에. 수용하면서, 자기 혁신과 더불어 양보할 것은 양보하고 이런 것을 전향적으로 내 보일 때, 연대가 좀 더 쉬워질 거라고 봐요.

일부에는 자성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어요. 내가 엊그제 박지원 정책위원장이 인터뷰한 걸 봤더니, 똑같은 말을 했더라고요. ‘민주당이 기득권을 버리고 오픈마인드가 되어야 한다.’고 얘기하는 민주당 세력들이 있어요. 그러한 세력들이 이번에 승리를 했기 때문에 ‘상당히 탄력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생각을 할 수 있는 거죠.

그런 힘을 이끌어내고 그리고 시민주권이 중요한 힘을 해야 하는 것이.. 시민주권 안에 민주당의 노무현 대통령을 따르는 사람들, 신당을 하는 사람들, 그 외의 사람들이 다 합쳐 있기 때문에.. 이 안에서 잘 협의가 되면 민주당도 견인해 낼 수 있고, 신당도 견인해 낼 수 있는 하나의 틀이 될 수 있어요. 그래서 시민 주권이 굉장히 중요하고. 시민주권은 이야기가 비교적 잘 되고 있습니다. 지금. 노무현 대통령을 따르던 사람들은 ‘어느 그릇에 담기더라도 함께 가자’ 이런 이야기를 수도 없이 했기 때문에..

이번 양산의 케이스도 민주당 후보로 나왔지만 민주당이다 아니다 떠나서 다 같이 모인 거나 마찬가지고. 기존 시민사회단체와의 연대가 잘 이루어진다면 저는 그 통합을 그렇게 비관적으로 볼 것은 아니다. 물론 각론으로 들어가면 쉽지는 않아요. 그래서 지자체의 공천을 하나의 네트워크로 민주당, 신당과 시민단체가 어우러진 틀을 가지고 연합 공천을 제대로만 해낼 수 있다면 승산이 있다고 보는 거죠.

총 : 한 당 안에서 공천도 힘든데 연합공천이 가능할까요?

한 : 가능하게 만들어야죠. 그거 성공 못하면 아마 우리는.. 승리가 쉽지는 않을 거예요.

총 : 그걸 본인의 임무로 생각하시는 거죠?

한 : 네. 그래서 사람들을 이제부터 접촉하려 합니다. 만나서 의논을 하고..

총 : 후보를 각각 내고 경선하고 그럴 수도 있겠죠?

한 : 네 그렇죠. 공정다고 생각하는 기준을 세워야겠죠.

총 : 소위 말하는 빅3. 한명숙, 이해찬, 유시민. 스타일이 다 달라요. 유시민은 새로운 당에 간다 하고... 이해찬은 큰 틀을 만들어 관리하고 싶어 하고... 총리님은 노무현 재단을 하며 스쿨을 하고 유가족을 돕고 그런 교육 사업과  중재를 하신다고 하고..

한 : 그러니까 지금 그게 다 겹쳐있습니다 우리가. 예를 들면 노무현재단의 이사 중에 가장 핵심적인 이사가 이해찬 총리고.. 시민주권모임에서 제가 중요한 핵심위원이고.. 그렇기 때문에 다 같이 의논을 하는 거예요. 그렇지만 행정적인 역할은 다르게 하고 있지만 따로따로 분화된 건 아니에요. 유시민도 시민주권의 운영위원으로 열심히 하고 있으니까.

그런데 왜 유시민에게 시민주권모임의 운영위원장을 맡기지 않았을까. 이해찬은 여차하면 본인이 직접 선수로 뛸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걸까.

총 : 그래도 다른 건 다른 것 같습니다. (웃음) 그래서 제가 여쭤보고 싶은 게 한명숙 총리가 바라보는 이해찬 전 총리의 장점 말고.. 애정을 담아서.. 단점이 뭡니까? 애정을 담아서요. (웃음)

서로는 서로를 어떻게 파악하고 있을까. 힘의 역학은 어떤 모양새일까. 서로의 생각이 갈리고 갈등이 생길 때, 그 역학관계의 파악은 문제해결 출발점이 된다. 

한 : 이해찬 총리는요. 제가 인연이 굉장히 오래 됐습니다. 인연이 깊고. 그리고 여태까지 민주화 운동이나 정치 행보를 하는데 중요한 결정을 할 때는 제가 꼭 의논하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여태까지 의논하면서 별로 엇박자를 내보지 않았어요.

이해찬 총리는 정치적 판단이 상당히 비상합니다. 그리고 전략가이구요. 그래서 항상 어떤 정치적 결단을 할 때는 조언을 구할 때 필요한 사람이다.. 같이 의논하는 사람이라는 게 관계 형성에서의 핵심이구요. 이해찬 총리의 약점이라면 대중성이죠. 저하고 비교했을 때. (웃음)

총 : 쉽게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다는 의미의..

한 : 네, 쉽게 좋아하고..

총 : 누나 같고, 엄마 같고..

한 : 그래서 쉽게 대중들이 접근하는데 비해서..

총 : 이런 거 좋네요. ‘나는 대중성이 있고 이해찬은 없다!’ 하하하.

한 : 본인이 알아요. 그걸 극복하기 위해서 굉장히 노력합니다, 이해찬 총리님이. 우리도 조언을 많이 하고.. “많이 웃으세요.”라든지..

총 : 사실 웃어도 안돼요. (폭소)

한 : ‘많이 웃으세요.’ 조언을 하는데, 그걸 꽤 많이 받아들이려고 하고요. 최근에 대장부엉이 카페가 만들어졌잖아요. 대장부엉이에서 참 재미난 것이 그 친구들이 어떻게 하고 노는가 하면.. 저도 인터뷰를 한 적 있어요. ‘이해찬 총리가 제일 잘 생긴 남자다’

총 : 그건 아닌데.(웃음)

한 : 그러고 놀아요. 그래도 ‘아니지 않냐’ 누가 얘길 하고, 그러면 ‘아냐 멋있어’ 그러고 대장부엉이에서 놀거든요? 그래서 이해찬 총리가 대중성을 확보하는데 한 발짝 한 발짝씩 가까이 가고 있는데.. 본인도 노력을 하고 있고.. 이해찬 총리가 정치적 판단이 비상하고 그렇기 때문에 본인이 갖고 있는 그런 약점을 점점 극복해서 중요한 역할을 하길 기대합니다.

총 : 중요한 역할이라면 차기 대선의 후보로요?

한 : 뭐.. 대선도 좋고.

총 : 본인도 그렇게 생각하나요?

한 : 얘기는 안 해봐서 잘 모르겠어요.

총 : 그래도 옆에서 지금 하고 있는 걸 지켜보면 알 수 있지 않습니까?

한 : 지난 번 실패했기 때문에.. 요즘 생각이 어떠신지.. 그건 얘기 안 해봤는데.. 이해찬 총리님이 요즘 굉장히 행복해하세요. 왜 그런가 하면.. 젊은 대장부엉이들 하고 함께 잘 놀고, 그리고 많은 시사를 받으시는 것 같아요. 여태까지 있었던 정치라는 틀, 정당이라는 틀 이런 것이 아닌 새로운 세계와 접하시면서 굉장히 많은 걸 본인 스스로 배우고, 그것에 대해서 자부심을 느끼시고 그렇게 하시는데.. 본인은 정당 사람도 아니고, 전혀 굴레를 벗어나서 자유롭게 시민정치운동을 담당하게 된 것에 대해 굉장히 행복해 하시는 걸 옆에서 보고 느껴요.

총 : 당원이 아니라 이제 팬을 만났으니까.

한 : 네. 그렇게 느꼈거든요? 저는 그게 참 바람직하다고 생각하고. 그것의 힘을 얻어가지고 점점 자기 변신을 해서 어느 시기든지 중요한 역할을 하시면 좋겠다..

총 : 변신이라.. 성형수술요? (웃음) 그러면 이해찬 총리가 유시민 전 장관에 대해 가지는 영향력, 장악력은 어느 정도 됩니까? 제가 왜 이런 질문을 드리냐면.. 이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어요. 예전에. 민주당의 한 의원으로부터. ‘한명숙은 이해찬의 말을 거절하지 못한다.’ 그리고 ‘유시민은 이해찬이 컨트롤 한다.’ 이야기 들은 지 좀 됐습니다만.

한 : 그래요? 저는 그렇지 않게 봅니다.

총 : 이제는?

한 : 이제는이 아니라..

총 : 그 사람이 잘못 본건가요?

한 : 유시민 장관은 유시민이예요.

총 : 그렇게 보시지 않는다?

한 : 네. 유시민은 자기 판단에 의해서 움직이는 사람이에요.

총 : 그럼 이 얘기는 맞나요? ‘한명숙은 이해찬의 말을 거절하지 못한다.’

한 : 저는 이해찬 총리가 뭐라고 저한테 요구한 적이 없기 때문에 특별히 그런 관계는 아닌데..

총 : 이해찬의 권유나 부탁이나 판단에 대해서 no라고 말하지 못 하는..

한 : 오히려 제가 정치적 판단을 할 때 동지로서 의논하는 관계지.... 이해찬 총리가 저를 컨트롤 한다거나 그런 적은 없는데요.

총 : 그렇게 생각 안하신다?

한 : 네. 그렇게 생각 안 해요.

총 : 이해찬 총리가 추진력이 굉장히 강한 분이잖아요? 근데 그렇게 되면 적도 많이 생기지 않습니까? 어떤 조직이든 내부엔 강건파, 온건파가 있는 법이고.. 이해찬 총리 싫어하는 사람도 있죠? 누가 싫어하나요? 하하

한 : 이해찬 총리는 이해찬 총리를 따르는 후배 의원들이 있고요. 이해찬 총리는 말을 단호하게 하고 결정적으로 하죠.

총 : 단정적으로?

한 : 네, 그 말이 맞는 것 같네요. 단정적으로 하기 때문에.. 좀 강성이죠. 근데 자기 생각을 직선적으로 말 하는 스타일이에요. 근데 그걸 좋아하는 사람도 꽤 많아요. 왜냐하면 아리까리하게 모사꾼처럼 우물우물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저도 그런 이해찬이 오히려 좋아요.

총 : 이해찬 전 총리하고 지금의 신당 추진 세력, 노무현 비서진 출신이거나 개혁당 출신들인데.. 그 분들과의 관계는 어떤가요?

한 : 저는 좋다고 보는데요? 아닌가요?

총 : 저야 모르죠. 총리님이 보시기에. 관계 역학을 좀 알아보려고 합니다.

한 : 전 사실 노무현 대통령 비서진과의 역사가 별로 없어요. 총리하면서 안면이 좀 생겼고, 이번 일을 같이 하면서 형성된 정도?

총 : 이번에 서거 겪으면서.. ?

한 : 네, 서거 겪으면서 관계가 형성돼서 저도 신뢰하고 좋아하고.. 그렇기는 하지만 이해찬 총리처럼 옛날부터 역사가 있지는 않아요, 저는. 그래서 내부의 누가 어떻고 그런 건 확실히는 모르는데, 크게 보면 저는 뭐 문제가 없다고 보는데요.

총 : 그러면 유시민의 약점은 뭔가요?

한 : 유시민은 자기의 정치적 입지를 분명하게 함으로써 자기의 마니아들을 형성하고 따르게 하는 굉장히.. 아주 매력 포인트가 있죠. 그런 매력 포인트가 있는데. 유시민의 약점은 마니아들을, 예를 들어 대권 주자가 되어야 한다든지 큰 어떤 정치적 일을 한다든지 하면, 그 지층을 넓혀야 하거든요. 지평을 확대하고 굉장히 넓혀야 하는데.. 그 넓히는 것에 한계가 있는 것 같아요

총 : 팬덤은 있는데 마니아로 한정되어 있다... 넓힐 가능성이?

한 : 노력하죠. 굉장히 노력하고 자중해요. 저랑 대권후보경선 지난 번 같이 했을 때도 참모진들이 ‘너무 칼날 같은 날카로운 비판 같은 건 하지 말아야 한다.’고 말하고.. 본인이 굉장히 자중하고.. 원래 겸손한 사람이지만 더 겸손하려고 노력하고 했는데. 내가 보니까 그렇게 하니까 유시민이 아니더라고요. (웃음)

유시민은 유시민다워야 유시민이 아닌가. 그 때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어쨌든 사람은 다 자기 나름대로의 개성이 있고 특징이 있는 거 아니에요? 유시민이 내 흉내를 내려고 한다고 해봐요. 얼마나 그게 유시민이 아니겠어요. 그래서 저는 기본적으로는 자기 생긴 대로 노는 게 좋다고 생각하고요.

총 : 그건 100% 동감합니다.

한 : 생긴 대로 노는 게 좋다고 생각하고요. 큰 꿈을 꿀 때 많은 사람들을 내 편으로 끌어 안는 것은 정책 통해 할 수 있지 않을까.. 개인적인 매너나 그런 것을 통해서가 아니라. 그래서 전 생긴 대로 노는 것이 좋다 그런 생각이 듭니다.

총 : 유시민도 차기 대권을 노릴까요? 보시기에..

한 : 글쎄.. 유시민 장관은 저하고 민주당 같이 할 때는 유시민 장관의 꿈이 뭔가 하면.. 정말 개혁적이고 선진적인 정당을 한 번 만들어 보는 거예요. 그래서 열린우리당 할 때 정당을 개혁하고 잘 해보려고 굉장히 애를 썼는데.. 근데 잘 안됐죠.

둘이 좀 통해가지고 얘길 해보면.. 본인은 ‘사실은 책이나 쓰고 학생을 가르치고 그런 쪽에서 나라의 비전 같은 거 제시하고 그러면서 살고 싶은데 참 골치 아프다’ 이런 얘기 참 많이 했었어요. 앞으로 이제 인기도가 10%를 넘어섰으니까 대권 꿈도 꿀 만하지 않겠어요?

당내 혁신위원장으로 소위 실용파 ‘정동영계’가 반대했던 열린우리당 내 기간당원제를 끝까지 옹호했던 그녀와 당시 유시민의원을, 일부는 환상의 복식조라고 또 일부는 지나친 이상주의라고 평했다.

총 : 꾸고 있을 거라고 보시는 거죠?

한 : 꾸고 있어야 되겠죠. (웃음)

총 : 그러면 이해찬도 나오고, 유시민도 나오면 누구 밀어주시는 건가요? (웃음) 중재해야 하는데..

한 : 당선 될 사람을 밀어줘야죠. 똑같은 사람이니까.

총 : 둘 중에 누가 되어도 상관없나요?

한 : 상관없죠.

총 : ‘얘가 그래도 조금이라도 나아’ (웃음) 이런 거 없으세요?

한 : 문제는 누가 당선이 될 수 있느냐죠.

총 : 이건 계속 물어보겠습니다. (웃음)

한 : 그런데 저는 이렇게 생각을 해요. 지금 유시민, 이해찬을 꼽아 말씀하셨는데. 저는 플러스  알파가 많이 나와야 한다고 봐요. 지금 정치권에 없는 하늘에서 떨어진 사람, 외부에서 있는 사람을 자꾸 찾으려고 노력하기 보다는.. 지금 정치권에 있어도요. 국정을 잘 운영하고, 올바르게 길을 걸어갈 사람, 이런 사람 많다고 봐요.

그런데 계기가 안 되고, 또 정치란 것도 일종의 바람이 형성되고 기회가 주어 져야 매력 포인트가 각인이 되어야 정치인으로서 각인이 되고 그러는 건데.. 아직 그런 계기를 못 만나서 못 된 사람이 꽤 된다고 보거든요? 

총 : 사실 다 그렇죠. 노무현 대통령도 그게 없었으면 안 됐죠.

한 : 노무현 대통령도 사실은 처음엔 그렇게 지지도가 안 나왔죠..

총 : 그럼 본인에게 그런 기회가 왔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한 : 제가요? 제가 여태껏 말했잖아요. 제가 어떤 역할을 하고 싶다고..

총 : 아니, 그렇게 생각하고 활동하고 있었는데 그런 계기가 팍 왔어요. 본인이 결정하기만 하면 가능성이 있어요.. 그러면 하실 수도 있나요?

한 : 글쎄요.. 저는 다른 일을 할 겁니다. 하하.

총 : 노무현 전 대통령도 경선 전에는 지지율이 한자리 수 였죠 아마. 근데 바람이 불고 20%, 30% 올라가고 50%, 60%까지 가고. 아무도 그렇게 될 거라 생각하지 않았죠. 그러니까 아무도 모르는 건데. 총리님한테 그런 기회가 왔어요. 그래서 1위로 부상되고.. 그래도 안 한다고 하실 겁니까?

한 : 저는 그런 마당에 아예 들어가질 않을 것 같아요. 지금 생각은 그래요.

총 : 지금 생각은요?

한 : 사람의 일이란 건... 제가 여태까지 걸어보니까 자기 생각대로 안 되는 측면도 있기 때문에 장담할 순 없지만 지금 제 생각은 그렇습니다.
총 : 이 문제는 앞으로도 또 계속 물어보겠습니다. (웃음)


여기서부터 자연인 한명숙.

총 : 이제 그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습니다. 자연인 한명숙. 총리 얼굴 모르는 사람은 없어요. 지지하느냐 안하느냐를 떠나서.

한 : 그렇게 됐을까요?

총 : 그렇게 됐죠. 근데 ‘한명숙이 총리하기 전에는 뭐했어?’를 아는 사람은 거의 없어요. 이게 굉장히 언밸런스한 건데.. 유시민이 예전에 뭐했는지는 알거든요? 노무현 전 대통령도 청문회부터 대충 안다는 거죠. 그런데 한명숙은 뚝 떨어진 것 같아요. 어느 날 갑자기 중요한 정치인이 되었어요. 해서 한명숙은 누구냐, 그 이야기 좀 해볼까 합니다. 부모님은 어떤 분이셨는지...  어릴 때의 모습부터 담아보려고요.

한 : 대게 엄마, 아버지 중에 어떤 사람은 아버지가 자기 인생에 크게 영향을 미친 사람이 있고, 그 다음에 또 엄마가 미친 사람이 있는데.. 저는 엄마 케이스에요.

총 : 어떠셨길래..

한 : 근데 저희 엄마가 일곱 딸 중에 맏딸이에요.

총 : 본인과 비슷한 케이스이네요?

한 : 저는 남자 동생도 있지만.. 그리고 외할아버지가 의사셨어요. 그런데 이북에서.. 황해도에서 참 존경받는. 그러니까 진짜 의사. 돈 벌려고 하는 의사라기보다 진짜 어질고 의로운 의사였어요. 그래 가지고 외할아버지의 이야기를 많이 들었어요. 저의 어머니가 의사가 되고 싶었어요, 그 시대에.

딸이어서 못 된 거예요. 그래서 간호사가 됐어요. 그 때 신여성으로 뾰족 구두 신고 기독 병원의 수간호원을 하셨던 분이에요.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제가 어머니를 많이 닮았어요. 뭐를 닮았냐하면.. 우리 어머니가 의지가 강하고, 굉장히 낙관적이에요. 그리고 간이 커요. (웃음)

총 : 하하. 지난 번에 말씀하신.. 물리적으로 크다~

한 : (웃음) 네. 좀 이렇게 대담하고 그러셨어요. 그리고 사회의식이 굉장히 높았어요, 어머니가. 그래서 제가 우리 남편하고 관계에서 결혼한 지 6개월 만에 남편이 그런 불행한 일을 당했는데, 13년 반 동안 혼자였을 때도 어머니는 ‘너, 남편을 다시 생각해 봐야 하는 거 아니냐...’ 왜냐면 저는 혼인신고도 안 했거든요,

총 : 그러니까 당시..

한 : 법적인 처녀죠.

총 : 아기도 없었잖아요. 사실상 연애하다가 가신 거나 마찬가지네요. 결혼식을 공식적으로 하셨나요?

한 : 네. 했어요. 교회에서 했어요. 정식으로 했죠. 경동교회에서.. 강원룡 목사님 계시는. 그런데 저희 어머니는 한 번도 제 남편에 대해서 시집을 잘 못 갔느니, 고무신을 돌려 신으라느니 그런 얘길 해본 적이 없어요. 그리고 제가 민주화 운동도 할 때도 뒤에서 많이 뒷바라지 해주시고. 제가 사회운동을 하는데 ‘우리 어머니가 없었으면 제가 했을까’ 그런 생각이 들 정도에요.

어머니가 늘 아이들 키우느라 바쁘셨는데도 늘 신문 스크랩을 해주셨어요. 나와 관련된.. 바빠서 못 보면 이만큼 쌓아 놓고.. 신문 스크랩을 해주시고.. 그 다음에 전화를 걸어가지고 ‘TV에서 무슨 토론 꼭 봐라’ 전화해주시고. 그렇게 하셨거든요. 그리고 민주화 운동할 때.. 그 때는 민가협이 없었어요. 대게 구속당한 자식 있거나 남편 있거나 가족이 있잖아요. 그 가족들이랑 같이 다니시면서.. 김대중 대통령이 대통령으로 당선되기를 그렇게 바라셨던 분이세요. 누가 시키지도 않는데 대통령 선거만 있으면 그 분을 위해서 노력하고 그러셨던..

총 : 이북출신이신데?

한 : 네. 이북 출신이세요.

총 : 그러면 외할아버지는.. 그 때 북에 남으셨고?

한 : 우리 아버지는 평양이고, 어머니는 황해도인데. 외할아버지가 양의와 한방 모두, 총독부 저기를 가진 의사셨어요.

총 : 자격증을 가진?

한 : 네. 자격증을 가진 그런 의사셨는데.. 말라리아가 엄청 돌 때였다고 하던데, 요즘 신종 플루처럼. 그 때 정말 줄이 정말 십리를 이었대요, 약을 타려고! 외할아버지가 약을 개발해서. 줄을 쭉 서면 그 약이 독해서 약만 지어 주는 게 아니라, 사람들이 가난하고 그러니까, 집에 엄청나게 큰 솥단지를 걸어놓고 하루 종일 밥을 해서 줬다고 해요. 종이에다가 밥을 이만큼씩 싸서 약하고 같이 주고 그런 일을 하셨다고 해요.

총 : 정부가 할 일을 하셨네요.

한 : 네. 그런 의사셨어요. 그런데 못 나오시고. 돌아가셨겠죠, 이젠. 음...

총 : 부모님과 떨어져 월남 한 케이스들이 남한에 와서 고생 엄청 하잖아요. 경제적 기반도 없고. 일가친척도 없고. 어렸을 때는 고생 많이 하셨겠네요.

한 : 저희 아버지는 일본의 중앙대학교 법대를 나오셨어요. 그러니까 엘리트셨죠. 그런데 아버지는 막내아들이었어요. 그래서 막내 기질이 있으셨고.. 근데 엄마는 맏이고.. 그러니까 그런 상황 속에서 아버지는 약간.. 그 오페라 아리아를 막 부르시는 분이에요. 제가 결혼할 때 파라다이스라는 노래를 부르셨던 분이에요. (웃음)

총 : 한량이셨구나. 그러나 생활력은 좀 부족한.. (웃음)

한 : 생활력은 엄마가.(웃음)

총 : 본인은 즐겁게 사시는데 와이프가 고생하는.(웃음) 본인도 형제 여섯 중 맏이시죠?

한 : 네. 그래서 피난을 내려왔는데..

총 : 몇 살 때시죠?

한 : 여섯 살 때.

총 : 어렴풋이 생각나겠네요.

한 : 아주 조금 생각나요. 피난 내려왔던 과정, 기차 탔던 과정, 이모님 집에 들러서 뭐 했던 과정 이런 것들이 조금 생각나는데.. 제가 좀 애기 때도 날렵했나 봐요. 제가 원숭이띠거든요.

총 : 저도 원숭이띠입니다. (웃음)

한 : 아, 그래요? 어디다 올려놓으면 어린 아이가 뛸 수도 없는데 팔짝 뛰어들고 그랬대요. 좀 영악했나 봐요. 시장 갈 때 엎고 가면 두부 살 때 ‘엄마 냄새 맡고 사세요.’ 그랬다고 우리 이모님들이 저한테 그러더라고요.(웃음) 그랬는데 피난 내려와서 고생을 했고요. 저희 집이 당시에 이북에서 자동차 공장을 했어요. 그 때 당시에는 최첨단 산업이죠. 대규모는 아니어도.

총 : 유지셨군요.

한 : 유지였어요. 잘 사는 집이었어요. 그런데 피난 내려올 때 한 달만 피해있자.. 그렇게 생각했고 그래서 땅 속에다가 다 묻어 놓고.. 아주 최소한만 가지고..

총 : 그거 다 지고 와서 피난 왔으면 풍족하게 사셨을 텐데. 하지만 지금의 한명숙은 없었을 거 같네요.

한 : 그렇죠. 피난 내려와서 고생하고.. 하다가 아버지 때문에 고생을 더 많이 했고. 아버지가 사업을 실패하셔서..

총 : 그게 전형적인 모델이지 않습니까. (폭소)

한 : 어머니가 안 하신 일이 없어요. 어머니가 교육의식이 굉장히 강하고 사회의식이 강하니까. 아이들 대학까지 공부 다 시키고 살만하니까 돌아가셨어요.

총 : 언제 돌아가셨어요?

한 : 94년도.

총 : 못 보셨네요. 본인이 큰 정치인이 된 것을.

한 : 네. 못 보셨죠. 그게 너무 아쉽죠. 제가 일하는 걸 보셨으면 굉장히 좋아하셨을 텐데..

총 : 뿌듯해 하셨을 텐데.. 그런데 어머니 닮았다고 하셨지만, 한 쪽만 닮을 수는 없잖아요? 아버지의 끼는 어떻게 이어졌나요?

한 : 좀 닮았어요. (웃음)

총 : 하하. 상상은 잘 안 가는데..

한 : 제가 되게 노는 것도 좋아해요.

총 : 뭐하고 노느냐가 중요하죠.(웃음)

한 : 노래도 하고 춤도 추고요.

총 : 춤! 아니 어떤 춤을 추십니까? 부채춤 이런 거? (웃음)

한 : 제가 크리스챤 아카데미에서 일을 할 때는 탈춤의 명수였어요. 탈춤도 추고요. 그리고 별별 춤 다 췄죠.

총 : 예를 들어 서양 춤들은요?

한 : 네. 서양 춤도 추고요. 우리는 항상 잔치를 하면..

총 : 춤도 재능인데 인정받는 춤사위셨나요?

한 : 아카데미에서 내일을 위한 잔치, 그런 게 있었거든요? 음악 틀어놓고 다 같이 춤도 추고. 저더러 무당이라고 했었어요.

총 : 디스코도?

한 : 디스코도.

총 : 잘하세요?

한 : 잘하고 못하고가 있어요? 끼대로 노는 거지. (웃음)

총 : 춤도 타고 나는 거라 손끝이 다른데.. 춤을 잘 추는 사람들은..

한 : 저는 잘 추는 편인가 봐요.(웃음)

총 : 노래도?

한 : 네. 노래도 하고. 제 이름이 한명숙이잖아요. 가수잖아요. (웃음)

총 : 그러면 뮤지컬이나 연기 이런 것도?

한 : 대학 다닐 때 불문학을 했잖아요? 그리고 고등학교 다닐 땐 제가 영어를 좀 잘했어요. 그래 가지고 영어로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영어 춘향전을 했어요. 제가 춘향이었어요. 그래서 제가 별명이 춘향이에요. 당시 저한테 막 사인 받으러 오고 그랬거든요?(웃음) 옛날에는 시민회관 이런 게 없었어요. 명동에 시공간이라고. 잘 모르시죠? 지금 뭐가 됐더라? 시공간이 옛날에 우리나라 최고의 극장이었어요. 시공간에서 공연도 하고. 대학 다닐 때는 불어 연극도 하고.

총 : 그런 분이 왜....  박교수님 지금 안계시죠? (두리번두리번) 어떻게 박교수님한테 반하셨어요? (폭소)

한 : 하하. 그러니까 이런 것 같아요. 우리 남편은 굉장히 정열적이었어요. 젊었을 때.

총 : 활동에?

한 : 리더십이 아주 강하고요. 그리고 호불호가 확실한.

총 : 맨 처음에 어디서 보셨는데요.

한 : 서클에서 봤어요.

서클은 경제복지회다. 김근태 전장관도 회원이었다.

총 : 연합 서클?

한 : 서울대 상대였잖아요. 상대 문리대 하고, 저희 학교(이화대학교)하고 서클을 했어요.

총 : 어떤 활동에서 그렇게 적극적이셨길래..

한 : 본인은 회장이고 제가 부회장이었거든요. 그랬는데 둘이 다니면서 연애했죠. 하하. 그런데 리더십이 강하고..

총 : 누가 사귀자고..

한 : 누가 사귀자고 한건 모르겠는데.. 좋아져 가지고 결혼하자는 건 제가 했어요. (웃음)

그녀가 이화여대 쌍쌍파티에 박교수를 파트너로 초대했다고.

총 : 왜 그러셨어요!! (폭소)

한 : 하하. 제가 돌았죠. 고생을 하려고.(폭소)

총 : 어릴 때라..(웃음)

한 : 그런데 우리 남편이 자긴 독신주의자라는 거예요. 그래서 결혼 안한다는 거예요. 제가 물 먹었죠.

총 : 남자들 중에 멋있어 보이려고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 있죠. (웃음)

한 : 그땐 그게 유행이었어요. 그 시대., 온다! 쉿!! (박성준 교수 들어 옴)(웃음)

총 : 근데 그래 놓고 결혼 안하는 사람 없어요.(웃음)

한 : 아, 그래요?

총 : 하하. 그러면 두 번째에 가서 하신 거예요?

한 : 그러다가..  여러 가지 우여곡절이 있다가 이제..

총 : 그럼 해주마.. (웃음)

한 : (웃음) 제가 어렸을 때 어머니가 생활력이 좀 강하시고 아버지가 막내 기질로 그렇게 사시니까. 그걸로 좀.. 욕구라고 그럴까. 그런 게 있었던 거 같아요. 근데 저 사람은 혼자서 시골에서 독학으로 열심히 공부해 서울 상대를 붙고.. 자기 능력으로.. 아버지를 보면서 자기 능력을 가지고 살아가는 남자에게 나도 모르는 사이에 끌렸던 거 같아요.

총 : (빵에 가서 13년 반을 떨어져 사느니)같이 사는 한량이 낫지.. (폭소)

한 : (웃음) 그리고 생각이.. 뭐라고 그럴까. 생각이 같았잖아요. 가치관이 같았잖아요. 그 때는 돈 있는 남자. 그런 게 전혀 안 부러웠어요. 그래 가지고 이제 이 남자를 좋아하게 됐는데. 내가 지금 가만히 생각해보면 ‘서울 상대 경제학과를 나온 사람이 이렇게 경제적 개념이 없는 사람이 있을까?’ (웃음)

부부가 신혼여행 가서 가장 먼저 한 일은 축의금을 세는 일이었는데, 그 자금으로 음악 클래식 애호가였던 박교수는 당시로선 고급이던 호마이카 전축을 샀다고 한다. 그 궁색했던 단칸방에서. 박교수는 교도소에서도 그 전축만은 팔지 말라고 신신당부했다고 한다.

총 : 경제적 개념은 나중 일이고 일단 한량이어도 13년 동안 같이 사는 게 낫죠.(웃음)

한 : 그러니까 제가 팔자가 좀 센 여자인거죠. 팔자 센 여자가 남편하고 떨어져 사는 거라고 하더라고요.

총 : 결혼한 지 6개월 만이었나요? 혼인신고는 안했고. 어머님께서도 재혼하라는 말씀 안 하셨고.

한 : 혼인신고를 왜 못했냐면. 요즘처럼 인터넷이 발달했으면 했을 텐데. 고향이 통영이었어요. 너무 멀어 바쁘고 그래서 놓친 거죠. 그래서 혼인 신고를 안 했는데 그런 일이 덜컥 생긴 거죠. 그러니까 법적으로는 부인이 아니죠. 그냥 사실혼이지. 그래서 면회를 해야 하는데 교도소에서 증명서를 가져오라는 거예요. 혼인신고가 안 되어 있으니까. 그래서 결혼사진 붙이고 어렵게 어렵게 했죠. 그러다가 13년 반 만에 나오는 그 해, 12월 달에 나왔는데, 11월인 걸로 기억해요, 그 때 혼인신고를 했어요.

직전에 혼인신고가 반드시 필요했던 이유는 박교수가 가석방에 신원보증 성격의 보호자가 필요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총 : 책에서 본 것 같은 데.. 간수 옷을 빌려 입고 사진 찍으신 거 있으셨죠?

한 : 아, 그러니까 누구의 증인을 서려고 재판에 나왔었는데. 저를 만나게 해 준거죠. 그래서 만났는데 ‘사진관에서 사진을 하나 박자’ 그렇게 돼서 사진을 찍었는데.. 안에다가 수의를 입었으니까 오버 코트 같은 걸 빌려줘서 입고. 잘 가려지지 않으니까. 수건을 이렇게 하고 찍은 사진이 있어요.

총 : 투옥된 지 얼마 됐을 때?

한 : 정확히 모르겠네. 그래, 한 3년 됐을까요?

총 : 원래 15년 형이었죠? 15년이 엄청나게 긴 시간이잖아요, 사실은.

한 : 제가 젊어서는 ‘15년이 얼마나 긴가’ 감을 못 잡고요. 15년을 다 살 거라는 생각도 안 했구요. 그리고 그 때는 신념이 아주 강했어요. 내가 옮은 일을 한다는 신념도 강했고. 우리가 추구하는 가치와 독재정권을 무너뜨려야 한다는 신념이 강했기 때문에.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스스로 ‘한명숙, 보통이 아니었구나’ 그런 생각이 들 정도로 그렇게 아주 신념으로 단단하게 무장되어 있어서 제 자신이 불행한 걸 못 느꼈어요. 항상 내부에서 희열이 솟구쳐 오르고 항상 당당하고 항상 웃고 항상 씩씩하고. 그랬어요. 여성 운동하는 쪽에서 맹렬 여성 1호였죠.

총 : 그래도 그런 거 한 10년 정도 하면 지칠 텐데..

한 : 정말 10년 정도 하니까 지쳤어요. 10년이 되니까 지쳐서. 그 때 병을 앓았어요. 지치고.. 그렇게 되면서 그 때 좀 아팠죠.

총 : 몸이 진짜로 아픈?

한 : 네, 몸이 아프고 뭐가 돋아나고. 특별한 병이 있다기보다는 누적된..

총 : 아이도 없었잖아요. 혼인신고도 안 되어 있고. 남편은 15년간을 못 만나게 되어 있고. 그럼 당연히 주변에서도 다시 생각해보라고 얘길 하지 않았나요?

한 : 제가 워낙에 신념이 강했기 때문에.. 나에게 그런 이야기를 할 수가 없었던 거죠.

총 : 아주 친한 사이면 그런 이야기도 할 수 있잖아요.

한 : 근데 저한테 그런 애기를 못 하는 게 내가 아주 불행하게 산다거나, 의미 없게 산다거나 그랬으면 그런 얘길 했을 수도 있는데.. 그 10년이라는 기다리는 생이 내 인생의 전성기였어요. 얼마나 열심히 일을 했는지. 인생의 꽃이나 마찬가지인 시간이었어요.

그러나 남편이 제 옆에 있었으면 그런 일은 없었을 거예요. 부인으로 살았겠죠. 그러나 남편을 감옥에 뒀고 민주화 운동을 했고 여성인권운동 했죠. 너무나 많은 일을 할 수 있었죠. 이 사람이 덕이에요.

총 : 남편분이 투옥 되지 않았더라면 지금의 한명숙이 없었을 수도 있는 거네요. 결과론이지만.

한 : 그렇죠. 이 사람은 그렇게 주장해요. (웃음) 그 와중에 내가 컸다고..

총 : 근데.. 박교수님이 그렇게 말씀하시면 안 되는 게. 보통은 그 사이에 여성인권운동을 하는 게 아니라 재혼을 하죠. (폭소)

한 : 그 때 책을 많이 읽고 공부도 많이 하고 민주화 운동을 하면서 많이 성숙했죠. 이사람 만났을 때는 160키에 40kg 소녀였는데..

총 : 따라다니는 남학생 없었나요?

한 : 많았죠.

총 : 그 남학생들 다 어쩌고.. 하필이면(웃음)

한 : 다 어쨌죠. 아니, 그 사람들이 저한테 접근을 못했어요. 내가 너무 강했기 때문에, 생각이 전혀 바뀌질 않았기 때문에. 그리고 내 삶 자체가 언제나 민주화 운동이랄지 의미 있는 걸로 언제나 채워져 있었기 때문에 전혀 공백이 없었어요.

어디까지나 여담이지만 관련해 재미있는 이야기 하나. 김근태 전장관은 어느 모임 인사말에서 농담처럼 한명숙을 짝사랑했다고 말한 적이 있다. 또 17대 상임위 때 권영길의원실 보좌진들이 그녀 앞에서 유난히 수줍어하는 권영길의원을 의아해 했다고 한다. 알고 보니 권영길 의원 역시 학창시절 한총리를 짝사랑했었다고. 하.하.하. 

총 : 그러면 교수님 전에 연애는 안 하셨습니까?

한 : 이 사람 만나기 전에 교재를 한 사람은 있었어요. 단순하게.. 그랬는데 이 사람 만나고는 없었죠.

총 : 그럼 사실상 첫사랑인가요?

한 : 네

총 : 첫사랑과 결혼해 6개월 만에 감옥에 가고 13년 반 동안 혼자 계셨던 건가요? (웃음)

한 : 네, 뒷바라지 했죠. 근데 그걸 버텨 낸 것이.. 저 사람이 안에서 저를 관리를 잘 하더라고요. (웃음) 그게 뭐냐면.. 편지에요. 글을 잘 쓰고 그리고 자기 마음을 담고, 그 안에 철학이 있고 가치관이 있고 삶을 지도해주는 스승 같기도 하고. 나를 변화시킨 사람이죠. 그런 것들을 굉장히 잘 소통됐기 때문에...

총 : 박교수님이야 그 안에서 그 것 밖에 할 게 없습니다. (폭소)

한 : 진짜로 일주일에 한 번씩 편지 쓰고요.

총 : 일주일에 한 번이면 많이 참았다가 쓰셨네요, 교수님께서.(웃음)

한 : 아니, 허용이 안 되니까.

총 : 매일 쓰고 싶으셨을 텐데..

한 : 한 달에 한 번씩 면회가 허용이 되요. 급수가 높아지면 그게 조금씩 완화가 되고..

당시에는 복역기간이 길어지고 모범수가 되면 면회와 편지의 허용 범위가 커졌다고.

총 : 그래도 중간에 고비가 없었어요?

한 : 진짜로 한 번도 안 빠지고 갔죠.

총 : 한 번도 고비가 없었다구요. 아유~

한 : 그러니까 이 사람과의 관계에서 회의가 한 번도 없었다니깐요. 나도 이상해요. 그래서 이 사람이 나오자마자 ‘이 여자 바보’라고 했죠.

총 : 그런데, 일단 나온 후. 사실 세월의 간격이 크잖아요. 13년 반의 갭이. 20대의 생각과 40대가 된 사람의 생각은 틀릴 수밖에 없고. 세상도 많이 변하고. 많이 싸우셨죠? 나온 이후에.

한 : 많이 싸웠죠. 근데 그런 이유로 싸우진 않고.. 이 사람이 몇 살에 나왔지? 내가 37이었고 이 사람이 41이었나 그랬어요. 근데 이 사람하고 같이 다니면 내가 더 나이 든 사람 같고 그랬어요. 이 사람은 청년 같고. 그리고 나오자마자 13년 반 동안 그렇게 힘들게 살았는데 속에 운동의 기질이 지속적으로 남아 있어 가지고 81년도였으니까 아주 격동의 시대였잖아요. 결합해가지고 계속 활동을 했죠.

총 : 또 잡혀갈까봐 걱정 안하셨어요?

한 : 그럴 정도는 아니었지만.. 둘이 뭘 먹고 살았는지 모르겠더라구요.

총 : 그러니깐요. 그 오랜 세월 차단되어..

한 : 아주 간신히 먹고만 산 것 같아요.

총 : 감옥에서 노역하면 돈이 조금씩 모이잖아요. 얼마 안 되지만..

한 : 9만 얼마 가지고 나왔어요. 10만원 조금 안되게. 그 걸 가지고 뭘 했냐면요. 이 사람이 그 안에서 일본어 하고, 중국어를 했어요, 독학해서. 영어는 교포들이 많이 들어오니까 뭐 간단하게 할 수 있는데.. 들어가기 전에도 책을 많이 봤으니까 그건 괜찮은데.. 중국어를 혼자 하는데 이게 맞는지 틀리는지 자기가 하는 발음이. 열심히는 하는데 모르니까. 나와 가지고 그 돈으로 중국어 테입을 샀어요 제일 먼저. (웃음)

총 : 13년 동안 자기 발음이 맞나 궁금해서? 나오자마자 그 궁금중부터 풀려고? (폭소)

박교수의 지적호기심이 어느 정도인지, 어떤 유형의 지식인인지 여실히 드러나는 대목이다.

총 : 그런데 본인도 크리스챤 아카데미 사건(1979년 4월 16일)으로 투옥되셨는데. 사건 내용이 뭔가요, 구체적으로?

한 : 크리스챤 아카데미가 사회 교육원이라는 걸 만들어서 중간 집단 교육을 했어요. 요즘은 선진국 대열에 서 가지고 외국 원조를 안 받지만 그 때는 독일에서 원조를 받았어요. 프로젝트를 내면 독일에서 재정 지원을 받아서 중간 집단 교육이란 걸 했는데. 중간 집단 교육이라는 건, 나라가 양극화 되어 있고, 말하자면 잘사는 사람과 못사는 사람이 너무 양극화 되었다는 거죠. 그래서 중간 집단을 잘 만들어서 건강한 허리를 만들어야 한다..

그걸 여성, 청년, 노동, 농민 또 교회 목회자, 크리스챤 아카데미가 종교 단체이니까, 이렇게 나눠 상당히 건강한 성인교육을 했죠. 우리가 거기 스태프였어요. 신인령 총장도 스태프였고. 당시는 긴급조치도 있었고 해서 운동하는 사람들이 다들 잡혀 들어갔거든요. 근데 우리가 마지막까지 안 잡혀 들어 간 사람이었는데. 정권에게 그 교육이 눈엣가시로 보였던 거죠.

총 : 진보지식인을 키우는..

한 : 그런데 그 교육 자체를 불온 교육이라고 해서..

총 : 특별한 사건이 있었던 건 아니고요?

한 : 뭐를 잡았냐면 우리가 4박5일 교육을 하면 마지막에 내일을 위한 잔치라고 해서 마지막 행사를 하거든요. 예를 들면 노가바 ‘노래 가사 바꿔 부르기’ 같은 거, 또 뭐 춤도 추고 여러 가지 그런 마지막 행사를 하는데.. 거기서 그게 아마 농민이었던가 노동자였던가 그랬는데.. 노래가사 바꿔 부르기에서 어떤 유행가를 바꿔 부른 게 있어요. 그런데 그 노래가 불온하다고 해서 잡혔어요.

크리스찬 아카데미는 수원에 ‘내일을 여는 집’이라는 기숙형 합숙소를 두고 일정기간 동안 함께 기숙하며 농민, 노동, 여성, 학생, 종교 다섯 파트로 나눠 교육을 했는데, 그녀는 당시 여성 부문 간사를 했다고 한다.

총 : 겨우 가사 때문에? 완전 핑계였던 거네요.

한 : 그 가사가 뭔가 하면. ♬우리들이 얼마나 고생을 더 해야, 아~ 좋은세상♬ 뭐 이렇게 부르고 후렴에서 ‘찬란한 내일을 위해’ 이렇게 불렀는데. 그게..

총 : 체제 전복. (폭소)

한 : 불온하다 이거죠. 그래가지고 잡히기 시작해서 뭐 고문 당하고.

당시의 노가바

“ 노동자가 얼마나 노동을 더해야 아~살 수 있나요
  우리 모두 지금까지 피~땀 흘려 일했는데 아~슬픈 현실
  지금까지 빼앗겼는데 계속해서 착취당하면
  노동자는 기계인가요 느낀 것이 너무 많아요
  설움에 지친 눈에 빛이 보여요 내일의 찬란한 빛이
  (노래를 못하면 장가를 못가요 아~미운 사람
  장가를 가~도 아들을 못나요 아~미운 사람
  아들을 낳아도 고자를 낳아요 아~미운 사람)

윤향기의 ‘다 그런 거지’의 가사를 바꿔서

 “다 그런 거지, 다 그런 거야, 그러기에 착취뿐이지
  처음 만나 사랑할 땐 상냥하던 사장이 늑대같이 변할 줄이야
  다 그런 거지, 다 그런 거야, 그러기에 작살내야지”

총 : 체포 당시 기억나세요? 체포 그 순간?

한 : 그냥 길에서 차에 실려 갔어요.

총 : 걸어가고 있는데?

한 : 나오라고 해서 나왔는데 바로 차에 실려서 남산으로 갔어요.

총 : 남산 지하실, 그 유명한. 거기 가면 일단 기본적으로 얻어터지잖아요.

한 : 얻어터졌죠.

총 : 많이 맞으셨나요?

한 : 네. 온 몸에 피멍이 들어서. 저만 아니라 다 고문당하고 그랬죠.

총 : 제가 김근태 전장관에게 들었던가? 일단 잡혀 가면 일단 팬다고 하던데..

한 : 저는 그렇게는 안했어요. 남자들은 그러는 것 같아요. 들어오면서부터 그러는 것 같은데. 저는 일정 정도 심문 하다가 옆에 있는 침대의 봉 빼가지고 사정없이.

총 : 아무데나? 온몸?

한 : 아무데나 무릎 꿇리고. 몸부림치니까 온 몸에 다 맞았죠. 죽는 줄 알았죠.

총 : 그 때..

한 : 그냥 죽었으면 좋겠더라고요.

총 : 하도 아파서?

한 : 아픈 것도 아프지만 공포가 말도 못하죠.

총 : 그걸 이긴 사람은 없다고 하더군요. 가끔 기억나지 않으세요? 트라우마 된다 하던데.

한 : 기억이 많이 났죠. 그러니까 상당 기간 동안. 예를 들면 동생하고 몸을 회복하기 위해서 나온 이후에 약수터에 가서 기거한 적이 있어요. 거기 관리인이었던 것 같았어요. 나중에 알고 보니까.. 근데 저쪽 산 밑에서 관리복 같은 것을 입은 사람들이 올라오는데. 막 도망갔어요. 잡으러 오는 줄 알고..

총 : 꽤 오래 가셨죠?

한 : 꿈에도 나타나고..

총 : 이제는 괜찮으세요?

한 : 이제는 괜찮아요.

총 : 후유증은 없으세요?

한 : 다리가 패였죠. 패이기도 하고.. 한방에서 어혈이 다 뭉쳤다고 하고, 신체적으로 후유증이 굉장히 컸는데.. 그런데 신체적인 것보다.. 당시 우리 남편이 고초를 당하고 제가 또 당하고 다른 사람들도 다 당했잖아요. 누군 어땠다, 누군 어땠다... 그런 경험을 하게 되면서 메모를 못하게 됐어요. 그래서 일기를 못 써요 지금도...

총 : 증거로 남을까봐?

한 : 다 가져가서 아무 것도 아닌 걸 갖다 붙였으니까. 그런 공포증.. 그런 것들이 있지요.

총 : 차라리 매로 때리는 건 덜 모욕적인데 직접 손으로 때리는 게 더 모욕적이잖아요. 남자들이 여자를 직접 주먹으로 때리고 그랬었죠? 구둣발로 걷어차고?

한 : 얻어맞을 때는 거의 까무러치니까.. 어떻게 때리는지.. 처음에 맞은 건 기억나지만 나중엔 구둣발로 맞았는지 손으로 때렸는지 모르니까. 그래서 변호사가 나중에 왔을 때 제가 부끄러운지도 모르고 이걸(바지) 다 벗어 보였다니깐요.

총 : 멍이 안 드신 데가 없었겠네요.

한 : 그렇죠.

총 : 그 때 고문했던 사람들 기억나세요? 얼굴이나 이름이나.. 김근태 장관은 기억하고 있던데..

1985년 당시 민청련 의장 김근태는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8차례의 전기고문과 2차례의 물고문을 당했다. 당시 그는 그들의 이름과 얼굴 그리고 고문과정을 어떻게 해서든 기억에 담아두려고 노력하며 전기고문시 몸에서 떨어져 나가는 피부의 조각들을 모았다고 한다. 그 조각들은 그가 투옥된 후 그의 아내에게 건내져 고문이 실재했다는 것을 증빙하는 유일한 자료 역할을 하다 그로부터 14년 후인 1999년 10월, 당시 그를 고문했던 이가 자수하면서 비로소 고문기술자의 존재가 세상에 드러나게 된다. 바로 이근안이다.  

한명숙은 그런 시대를 온 몸으로 살아냈던 것이다. 

한 : 이름은 말을 안 하죠. ‘사장님, 사장님’ 그러죠. 자기네끼리.

총 : 얼굴은 기억나세요?

한 : (도리도리)

총 : 나쁜 놈들! 밝혀야 하는데.

한 : 저는 그런 정도였죠. 그러나 그것도 죽고 싶을 정도였고.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당하고 있는지가 다 들려왔어요. 소리도 들려오고, 어떤 사람은 모의 총살도 당했어요.

총 : 협박하기 위해서?

한 : 그 때는 정말 공포가 말도 못하죠.

총 : 너 사실대로 말하지 않으면 죽는다..

한 : 아마 그렇게 했던 걸로 알고 있고.. 담뱃불로 지진 경우도 있고... (잠시 침묵) 그리고 우리 사건만이 아니고 들어가서 당한 이야기를 들어보면 아휴.. 잔인하죠.

총 : 그런 분들이 따로 모여 고문 피해에 대해 국가대상으로 소를 제기한다거나 그런 움직임은 없었나요?

한 : 없었어요.

총 : 아예 기억하고 싶지 않아서 그랬을까요 다들?

한 : 그런 걸해서 된다고 생각을 하질 못했던 것 같아요. 요즘 같으면 모르겠는데 그 땐 상상을 못했던 것 같아요.

총 : 3년 계셨죠?

한 : 2년 반이었는데요. 2년 4개월 있었어요. 2개월 특사 받았어요. (웃음)

총 : 억울하지 않으셨어요? 남편 분도 잡혀 있는데 자신까지 잡혀 가고..

한 : 판결하는 판사가.. 나는 세상에 이런 이야기를 하는 판사가 있나..

총 : 이름 기억하십니까, 판사?

한 : 기억 못하겠어요.

총 : 기억 하셔야 하는데.

한 : 그 판사가 하는 말이, 남편도 들어가 있는데 정신 못 차리고 부인까지 했다고 저한테 오히려 중형을 줬어요. 교도소에서 얼추 비슷하게 출소하겠다고 발언을 해서. 그래서 81년도에 둘이 똑같이 나왔어요. 하... (헛웃음)

총 : 일부러 그렇게 한 거네요.

한 : 판사가 그런 발언을 했다니까요. 괘씸죄가 덧붙었던 같아요. 남편이 지난 십년을 그러고 있으니 완화시켜 주겠다..가 아니라 거꾸로 였다니깐요.

총 : 나쁜 새끼. (폭소) 이름은 기억 안 나시고요?

한 : 이름은 기억 안나요.

총 : 제가 한 번 찾아봐야겠습니다. 자료를. 그런데 그렇게 같이 나오셨으면 어떻게.. 뭐 먹고 사셨습니까. 한 사람은 13년 반, 한 사람은 2년 반을..

꼭 찾아볼 것이다.

한 : 그래요. 그래서 가난하게 살았죠. 계속 운동했어요, 그 이후에도. 저는 여성운동하고 민주화 운동 계속됐죠. 같이 했는데 저희 남편은 번역을 많이 했어요. 번역을 많이 해서 수익을.. 생활수단으로 번역을 하고, 저는 활동가였으니까 주로 강연을 좀 많이 하는 편이었고, 그런 수입 가지고..

총 : 그게 부정기적이잖아요.

한 : 그럼요. 비정규직이지, 비정규직. 아니 뭐.. 운동권끼리 뭐 그렇게..

총 : 한 달 수입이 얼마나 되셨어요?

한 : 많았겠어요?

총 : 아니 그러니까 합쳐서 평균 얼마였나요? 대략 기억을 떠올리시면? 50만원은 됐나요?

한 : 그 때 당시에? 불규칙 했어요.

총 : 적을 땐 얼마였어요?

한 : (웃음)

총 : 그럼 제일 많았을 땐, ‘이번 달 우리 부자 됐어’ 이런 땐?

한 : 돈의 개념이 잘 없어가지고. 그 때도.. 그러다가 저희 남편이 안병무 박사가 하시는 신학 연구소라고 있었어요. 거기 연구소에서 학술부장 하면서 취직을 했죠. 월급을 받고..

총 : 그게 얼마 있다가 되신 건가요? 나오고 나서?

한 : 글쎄. 한 2~3년?

총 : 2~3년 동안 월평균 수입이 50이 안 됐다는 거죠?

한 : 부끄러워서.. 하하

총 : 뭐가 부끄러우세요. 총리도 하셨는데. 하하. 50만원도 안 됐던 건가요. 그 때는?

한 : 한 50만원 정도 됐던 거 같아요. 그러나 그것도 정기적으로 딱 50만원이 됐다 말할 순 없죠.

총 : 장사가 잘 될 때야 50 만원 정도라.. (웃음) 짝사랑조차 안 해보셨어요? 오로지 교수님 한 분만.

한 : 네. 저는 남자 잘 몰라요

총 : 그건 반칙 아닌가요? (웃음)

한 : 아니, 다른 일이 너무 많으니까. 지금은요.. 멋진 남자가 있으면 연애도 해보고 싶은데.. 멋진 남자를 찾을 수가 있어야지.(폭소)

총 : 본인이 추후 정치를 할 줄 모르셨죠?

한 : 몰랐죠. 저는 정치를 한다는 걸 생각조차 안 해봤죠.

총 : 박 교수님은 혹시 알아보셨답니까? ‘당신은 나중에 정치가가 될 거야..’

한 : 아니 뭐 우리는 정치는 생각도 못했는데.. 제가 민주화 운동하고 여성 운동을 하다가 보니까 김대중 대통령하고 연계가 되고.. 그렇게 됐는데 1995년에 우리 남편이 35년 만에 졸업을.. 서울대학교 다닐 때 한 학기를 못하고 제적을 시켰어요. 이 사람은 졸업을 했어야 한다고 생각을 했는데 하여튼 제적을 시켰어요. 그래서 졸업장을 못 받았어요. 졸업장이 없으면, 우리 남편은 책하고 공부 이런 것 밖에 모르는 사람인데..

그래서 대학을 갔더니 그 때 한창 졸업 못한 사람들을 복학시키는 시기였어요. 그래서 가보니까 한 학기 못 한 걸로 되어있는 거예요. 갔더니 학과장이 동창인거야. 정기준 학장이라고. 그래서 한 학기를 했어요. 그래서 35년 만에 대학을 졸업했어요. 근데 그게 신문에 크게 났어요. 35년 만에 졸업 했다고. 그래서 이 사람이 그걸 들고.. 이 사람이 민중 신학을 이런 걸 했어요.

안병옥 박사님 신학 연구소에 있으면서 그 분들이 다.. 문익환 목사, 안병옥 박사 이런 분들.. 민중 신학이 굉장히 부흥기였다고 할까. 그런 시기가 있었는데. 그걸 연구했는데 당시 일본하고 신학연구소가 연계가 되어서 도미사카 크리스챤 센터라는 게 있어요. 일본에. 거기서 초청을 받아 가게 됐어요. 거기서 협력 스태프를 하면서 월급을 받으면서 릿쿄대학교를 신학으로 들어가게 된 거에요. 그래서 거기에서 공부를 해가지고..

총 : 총리님도 같이?

한 : 저는 오랫동안 너무너무 지쳐서.. 쫓아갔어요. 쫓아갔는데 여성청년연합의 공동대표를  안 떼어줘서. 그냥 그 단체 대표로 갔죠.

총 : 얼마나 있었어요, 일본에?

한 : 2년 반 있었어요. 그런데 이게 제 운명인지, 제 성향인지를 모르겠는데.. 거기 가서 이 사람은 공부를 열심히 해서 2년 반 만에 박사학위를 받았고 저는 일본 가서 일본어를 공부 했는데, 6개월 만에 일본말로 강연을 다녔다니깐요.

그 때 종군위안부 문제가 굉장히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어가지고. 종군위안부 문제를 논하려면 한국에서 여성대표를 불러와야 하는데 제가 이미 거기 가 있었으니까 저를 써 먹기가 얼마나 좋았겠어요. 그래서 일본의 시민단체들하고 같이 열심히 일했어요. 거기 가서도 또..

총 : 좀 쉬러 갔는데..

한 : 네.. 그렇게 일본에서도 일하고.. 1995년인가. 지방자치 선거가 있을 때 여성연합 공동대표니까 한국에 와서 후보를 17명 냈어요. 전 지역을 다니면서 지원을 해 가지고 17명 중에 14명을 붙였어요. 그런 아주 획기적인 일이 있었어요. 그렇게 일본에 있는데.. 남편하고 정말 오랜만에 휴식을 취하러 갔는데.. 제가 지금 아들이 하나 있거든요. 걔 초등학교 때 데려갔거든요. 가족이 다 간 거죠. 어느 날 갑자기 김대중 대통령이 전화를 하신 거예요.

총 : 그 전에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는데요?

한 : 아니, 김대중 대통령님은 알지요.

총 : 제 말은 사적으로 만난 적이 없었나요 그 전에는?

한 : 아니에요. 뭐.. 가정법 개정이랄지 그런 계기로 알고는 있었지요. 그랬는데 전화를 하셔 가지고 ‘이건 비밀인데’ 그러니까 ‘보안을 지켜야 하는 건데’ 당시 국민회의였을 거예요. 새천년민주당이 만들어지기 전에 당을 만드시려는 거예요. 그래서 ‘이런 걸 하려고 하는데 당신을 여성 대표로 하고 싶다. 그러니 올 수 있느냐’

그래서 제가 너무 깜짝 놀라 가지고. 이우정 선생님이 들어가서 당에서 비례대표로 일을 하고 있을 때였는데 ‘이우정 선생 통해 자세히 설명할 테니까 마음의 준비를 해라’ 말씀을 하시고 끊으시는 거예요.

총 : 직접 전화 하셔서?

한 : 네. 그렇게 이우정 선생이 전화를 하셔가지고 ‘이만저만 하려고 하는데 당신 여성 대표로 와야겠다.’ 그러시는 거예요. 근데 저는 그 때 정치에 대해 거부반응이 있었고 나는 시민사회단체 하는 게 훨씬 맞는다고 생각했어요. 정치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은 정치에서 오라고 초청받으면 생각도 안하고 가잖아요.

총 : 정운찬.(폭소)

한 : 근데 저는 그 쪽은 저한테 안 맞는다고 생각해서 고민고민하다가 거절했어요. 그 때 안 갔어요. 그 때 안 가서 제가 좀 찍혔죠. (웃음) 그래서 김대중 대통령이 사람들 모인 공식석상에서 ‘비례대표 준다는데도 안 오는 사람이 다 있다’ 이러시고 얘기를 하셨다고 그래요. 그래서 일본에 있었어요. 일본에서 종군위안부 문제 열심히 하고..

그리고 우리 남편이 2년 반 만에 학위를 끝내고 미국에 union theological seminar라고 있는데 거길 가게 돼서 미국으로 옮긴 거예요. 미국으로 옮겼는데 저는 일본에 있을 때 학계로 갔으면 좋겠다 싶어 여성학과 관련한 논문을 쓰고 있었어요.

총 : 진로를 학계로 두고 논문 쓰고, 강단에 서고 그런 플랜이 있었네요?

한 : 네, 시민사회단체를 돕고, 아이들 가르치고, 연구하고... 이런 쪽 성향이었죠. 이화여자대학교에서 여성학 석사를 했기 때문에 논문을 쓰고 있었어요. 근데 논문을 다 못 쓴 채로 미국으로 가게 된 상황이었어요. 그 교수가 미국에 오면 지도를 해주고 그렇게 하기로 했었는데.. 근데 느닷없이 대통령에 당선이 되셨잖아요.

유니온 신학교에 정현경 교수라고 있었어요. 후배거든요. 둘이 함께 당시 대선에서 한국으로 사람들 투표하러 보내기 운동을 했었죠. 근데 당선되셨는데.. 또 연락이 온 거에요. 대통령이시니까 이재정 총장하고 정균환, 당의 중요한 사람들이 막 압력을 넣기 시작하시는 거예요. 아~ 그런데 12월에 논문을 제출하기로 되어 있는데 그 때가 8월 말이었어요. 조금만 더 하면 끝나는데.. 그리고 정치권에 간다는 것이 나는 너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었는데. 한국에 계신 분들하고 의논을 하니까 여성단체 쪽에서는 ‘가야 된다’ 이러고.

또 박원순 변호사님이 조희연 교수과 참여연대 만들 때 날 보고 여성대표로 오라 하셨는데 그걸 나는 ‘한국가면 하겠다. 여기 있는데 그걸 어떻게 하느냐’ 그랬더니 박원순 변호사님이 ‘임기총회가 있으니 이름만이라도 걸어야 한다.’는 거예요. 그래서 이름이 거기 걸쳐 있었어. 근데 거기서는(참여연대) 정치참여는 안 되는 거야. 나는 얼떨결에 거기 이름이 올라가 있었는데 또 거기서는(참여연대) 반대하고..

총 : 시민단체 걸려있고, 민주당 걸려있고, 학위도 걸려 있고.

한 : 그래 가지고 골치가 너무 아픈 거예요. 고민도 너무 되는 거예요. 그런데 직접 연락하신 걸 두 번이나 거절 한다는 게 용기가 안 나는 거죠. 온 입이 부르트고. 너무 고민을 해 가지고..

총 : 월급 제일 많이 주는 대로 가면 되는데. (폭소)

한 : 근데 뭐 결국 결단을 했어요. 9월 12일 날 새벽에 도착해서 그 날 저녁때 발기인 모임(새천년 민주당)을 했는데, 운동화를 신고 와서 제 동생보고 옷 하나 사와라 해서 그렇게 옷 차려입고. 그렇게 저녁 때 참여했어요. 그 때 김대중 대통령 뵀어요. 그 때 시작해서 지금 여기까지 온 거에요. 정신없이.

당시 그녀는 달랑 작은 가방 하나 들고 혼자 귀국했다고 한다.

총 : 그 때부터는 다음 시간에 하기로 하고요. 이제 본격적인 정치인이 되신 후의 행보는 다음 시간에 하고 오늘은 그 직전까지만 이야기하죠. 그럼 박원순 변호사를 더 먼저 만나셨네요? 유시민 장관보다?

한 : 그렇죠. 박원순 변호사님하고는 사실은 구체적으로 함께 일을 해보진 못 했어요. 시민사회단체 다른 영역에서 일을 했고 나는 여성운동을 했고 그래서 알지만 함께 한 것은 아니었죠. 유시민 장관은, 물론 알았지만 누나 유시춘씨도 알고, 당에서 같이 정치를 하면서 제대로 알게 됐죠.

총 : 오늘은 이만큼 해야 할 것 같아요. 개인 한명숙까지. 정치 입문 직전까지. 시간도 됐고. 정치 입문하고 나서 또 따로 다뤄야 할 수많은 일들이 있었으니까.

한 : 이제 한번만 더 해요. (웃음)

총 : 한번 해보고 더 해보고.

한 : 하여튼 한 가지 말하고 싶은 건.. 제 성격인지.. 하여튼 나 자신이 ‘어떤 일을 하고 싶다’는 게 명확해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정치를 하면서 어떤 역할을 ‘꼭 내가 해야겠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었어요. 정치인으로서는 권력의지가 없다고 표현 할지 모르는데 두 번 장관하고 국회의원도 하고 총리도 했지만 그런 걸 제 정치적 목표로 세워본 적이 없어요.

그냥 상황에 따라서 제가 할 수 있는 역할에 최선을 다해 어떤 성과를 냈다.. 이렇게 결과적으로는 평가하지만 목표 자체를 그걸로 세운 적은 없거든요. 앞으로도 ‘나는 이걸 꼭 해야지’ 이렇다기보다는 우리 진영이, 대한민국이라는 나라가 올바른 길을 가도록 하는 그루터기가 되도록 만들고 싶어요. 그게 커요.

우리나라가 분단이 되었기 때문에 사실상 진보니 보수니 하지만, 저도 진보이고 싶어요, 그러나 지금껏 진보를 못했어요. 제가 펼친 정책이나 그런 걸 본다면. 사실상 합리적으로 진보와 보수의 논란이 있을 수 있고. 모든 것을 냉철하고 합리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국민적 민도. 그런 걸 만들고 싶은 욕망이 가장 큽니다. 그게 반영됐으면 좋겠어요.

총 : 그럼 2,3주 후에 한 번만 더 뵙고.

한 : 그럼 이다음에는?

총 : 이다음에는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 이야기, 장관 이야기, 국정 정책에 대한 이야기

한 : 그건 내가 할 얘기가 있어요.

총 : 두 분 차이점도 이야기 좀 하고. 잃어버린 10년 이야기도 좀 하고. 정치인 되신 이후 이야기를 하려고요. 그리고 나서도 빠진 이야기 있으면 그때 또 보죠. (웃음)

두 번째 이너뷰는 여기서 두 시간 반만에 끝이 났다.


정치가에게 권력의지는 흠이 아니다. 권력없인 원하는 세상을 구현할 수 없다. 오히려 권력의지 없는 정치가는 영리추구 않는 기업가처럼 존재의미를 상실한다. 그런데 그녀는 스스로 권력을 내려놓겠단다. 대신 좋은 권력을 탄생시킬 토양을 구축하는 데 기여하겠단다.

내가 아는 한 대한민국 정치사에서 스스로 권력을 내려 놓은 정치가는 딱 한 사람 있었다. 노무현. 그 점에서 그녀는 분명 노무현을  닮았다. 그러나 노무현에게 권력의지 자체가 없었던 건 아니다. 그런데 그녀에겐 그것이 없다.

권력의지 없는 정치가가 현실정치에서 과연 존재가치를 가질 것인가. 그녀는 대한민국에서 전혀 새로운 유형의 정치가가 될 것인가.

그녀는 과연 우리에게 무엇이 될 것인가...

열흘 후, 다시 한 번 그녀를 만나야겠다. 
 

新뽕빨이너뷰한명숙을 만나다 - 첫번 째 인터뷰 보기

by danbee | 2009/11/17 14:56 | 트랙백 | 덧글(0)

퍼온글 - 한명숙을 만나다(딴지일보 인터뷰)

여러 많은 사람들이 읽어보면 좋을 듯 싶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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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新뽕빨이너뷰] 한명숙을 만나다(1)
(딴지일보 / 딴지총수 / 2009-10-08)


☞ 딴지일보에서 [新뽕빨이너뷰] 원문 보기!!


거인 둘이 스러졌다. 그리고 이명박은 건재하다. 상실감과 무력감, 상당하다. 이제는 그들 없이 다시 시작해야 하는 거다. 그러나 다행이다. 처음부터 다시는 아니다. 두 거인은 유산을 남겼다. 바로 거기서부터, 하면 되는 거다. 본지는 이제부터 그 유산들을 추스르고 정리하고 그리고 거기서부터 어떻게 앞으로 나아가야 할지, 그 이야기를 시작하려 한다.

이 인터뷰 시리즈는 그 첫 번째 시도다.

먼저 한명숙 전 총리를 만나기로 했다. 그녀를 통해 이야기를 시작하기로 한 건, 그녀가 노무현이 남기고 간 사람들의 ‘엄마’이기 때문이다. 다치고 지쳤을 때는 ‘엄마’가 필요한 법이다.

약속 잡기가 쉽지 않았다. 건강이 좋지 않단다. 그럴 만 했다. 결국 추석연휴 직전인 10월 1일(목) 오후 3시 30분, 그녀 남편이 운영하는 길담서원에서 만났다. 두 명의 보좌진이 배석했다.


마주 앉았다. 실물로 보니 나이보다 그리고 생각보다 곱다.

총수 : (커피와 함께 딸려 나온 작은 컵을 보며) 이게 시럽인가요? 입맛이 촌스러워서.

한명숙 : 달달한 게 좋죠. (웃음) 이 커피가 맛있거든요? 고급 커피에요. 이게 네팔 커피에요? (뒤에 있던 길담서원 스태프가 킬로만자로, 안데스, 히말라야의 선물을 거론하고.)

총 : 공정무역으로요?

한 : 네... 노무현 대통령은 날마다 ‘난 달달한 커피가 좋아요.’하면서 만날 다방커피만 드시는 거예요. (웃음) 국무회의를 하는 데 중간에 한 번 티타임이 있어요. 날마다 나가면 이런 커피 안 주고 인스턴트 커피만 주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도 덩달아서 만날 맥심커피만 마셨어. 하하하.

총 : 맥심. 으하하하.
한 : 설탕, 프림 든.. 그것만 드셨어...

그저 커피 이야기만 해도 노무현 생각부터 난다. 그녀는 그렇게 노무현상실증후군을 겪고 있었다. 무슨 이야기인지, 보면 안다.

총 : 앞으로 인터뷰는 영결식, 친노 진영의 분화 그리고 총리님은 앞으로 어떻게 하실 것인지. 총리님 개인 이야기. 13년 반 동안 생과부. (웃음) 그 13년 반 동안 한명숙의 마음을 흔든 남자는 대한민국에 단 한 명도 없었나. (웃음) 그리고 두 대통령의 공통점, 차이, 철학, 정책, 집무 스타일 등 지난 10년간 이야기를 할 텐데. 오늘은 그중 영결식의 뒷이야기. 친노진영의 미래까지 하고. 다음엔 한명숙은 어떻게 할 것인지, 한명숙은 누구인지. 그리고 지난 10년을 정리하는 이야기. 그렇게 총 5회 생각하고 있습니다.

한 : 다섯 번 한다면서요?
총 : 일단 두 번까지만 알려드리겠습니다. 미리 예습하실까봐. (웃음)
한 : 예습 안 해요. 예습하면 잘 안돼요. (웃음)

총 : 하하. 제가 노 대통령 두 번 인터뷰 했습니다. 한 번은 부산시장 떨어지고, 그 다음은 해수부 장관 하실 때. 대통령 되고서는 인터뷰 요청조차 해본 적이 없어요.

한 : 부산시장 나가셨던가?

총 : 부산시장 떨어졌었죠. 하여튼 우린 대통령 됐다고 이득 볼 생각은 없기 때문에. 그래서 퇴임하고 나서 2년 정도 후에나 인터뷰 해야지.. 했는데 갑자기 가시고. 김대중 대통령도 올해 안에 인터뷰 해야지.. 했는데 또 가시고.. 저부터 상실감이 크거든요. 국민들 상실감도 크고 무력감도 크죠.

그래서 이제는 추스르고 앞으로 정리를 하며 나가자. 일단 인터뷰를 통해 정리부터 해 나가자. 첫 번째로 한명숙 총리다. 두 분 다 모셨고, 두 분 뒤에 남은 미망인들과도 가장 친하고, 앞으로 어떻게 하실지 사람들이 가장 궁금해 하는 분 중 하나고.. 해서 오늘부터 장기 뽕빨 인터뷰를 하려고 하는데.

한 : 오늘은 시간 정해놓고 하는데, 다음 번 할 때는 하루 종일 해도 좋아요.
총 : 가능합니다. 하하하. 제일 오래한 뽕빨 인터뷰는 김문수 의원 17대 때. 다음날 새벽까지. 소주도 먹이고...

한 : 다음에 할 때는 좀 여유 있게 할 수 있고요. 오늘은 요게(목) 자신 없어서.

의사가 아예 말을 하지 말라고 했단다. 그런데 결국 그 자리에서 무려 3시간을 쉬지 않고 인터뷰하고 말았다.

총 : 다른 얘기 전에 이 것 좀 여쭤봐야겠습니다. 정운찬 총리 말입니다. 사실은 민주당에서 영입하려 했던 인물인데, 갑자기 갔단 말이죠. 왜, 갔을까요?

한 : 글쎄... 아무래도 자기 자신이 자기의 진로에 대해 목표가 있을 겁니다. 그것이 대선이든, 자기 목표를 달성하는 프로세스로서 이 선택이 좋다 생각했을 것 같아요.

총 : 제가 어제 박원순 변호사를 만났는데. 질문을 했어요. 총리 제안은 받은 적 없냐? 자기에게는 온 적도 없고, 자기는 와도 거절했을 거라고 하더라구요. 그런데 정운찬 총리는 오케이 했잖아요. 평소의 주장과 철학과는 다른 정권인데. 그럼 지렛대로 삼으면 안 되는 건데. 그런데 받았어요. 어떤 사람이길래 이게 가능한 걸까요?

한 : 저는 정운찬과 박원순은 다르다고 봅니다. 박원순은 스스로가 이 사회 속에서 영유할 수 있는 자기 것을 많이 포기한 사람이에요. 자기 꿈을, 사회적 지위보다는 우리나라 미래에 포커스를 두고 자기를 굉장히 낮추면서 공동의 이익을 실현하기 위해 자신의 것을 포기하고 버린 사람임에 반해서, 정운찬은 그렇지 않습니다.

이 분은 탄탄대로를 걷던 분이고 국민들에게 전혀 검증이 안 된 사람이에요. 저도 정운찬 총리는 안 지 오래됐어요. 남편 후배(결혼 6개월 만에 시국사범으로 체포되어 13년 반 동안 옥고를 치른 남편 박성준 교수는 서울대 경제학과 출신이다)이고. 넓은 의미에서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사람이다.. 그 정도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하지만 이 분은 국민을 위해서 나라를 위해서 자신을 투신해 봤거나 고통을 당해봤거나 자신을 버려봤던 경험이 없는 사람이에요. 그래서 저는 검증이 안 됐다고 보고 있었는데.. 이번에 총리되면서 실망한 게 뭐냐면. 두 가지 아니에요? 경제와 4대강에서 이명박 대통령하고 다른 게 없는 거예요. 좋다는 거예요. 그렇게 이야기하고 나오니까. 이건 아니구나...

총 : 그냥 이건 아니구나... 생각하셨나요. 아님 이건 나쁜 놈이구나... 생각하셨어요.(웃음)

한 : 실망했죠 뭐. 기대할 게 없다.
총 : 그렇게 곱게?
한 : 제가 원래 곱지 않습니까?

총 : 으하하하. 박원순 변호사는 사심이 없었던 거죠.
한 : 박 변호사는 우리가 말하는, 서울시장에 도전한다든지 할 때도, 사심이라고 표현할 순 없을 것 같아요.

무심코 던진 이 한 마디에 묻어 있는 몇 가지 정보조각. 박원순 변호사가 서울시장에 도전할지도 모른다는 거. 그 경우 사심이 아니라고 본다는 거.

그녀 자신이 서울시장 잠재후보군 중 하나로 여기지는 상황에서 그렇다는 말은, 본인이 아니라 박원순 변호사를 지원할 수도 있다는 건가. 목젖까지 질문이 치밀었으나 다음 인터뷰 꺼리라 일단 눌렀다. 

총 : 그럼 그건 어떻게 생각하세요? 위장 전입부터 병역, 세금.. 대, 여섯 가지 걸렸잖습니까?

한 : 아니 그런데 지금 이명박 대통령이 추천하거나 지명하는 사람들은 그냥 그게 필수이고, 기본인 것 같아요.

총 : 일부러 그러는 것도 같아요.
한 : 일부러 그러는 건 아니고...
총 : 위장전입 안했어? 그럼 후보 제외해.(웃음)

한 : 대통령 스스로도 위장 전입하고 위장 취업했던 사람이니까. 그러고도 대통령 됐잖아요. 그러니까 그 밑도 괜찮다.. 저는 사실 경우에 따라 어떤 직위에 따라서는 지나갈 수도 있다고 여기긴 하지만, 적어도 법무부 장관이나 법을 집행하는 사람이나 총리나 대통령이나, 이런 사람들은 국민들에게 법을 지키시오 하는 사람들이잖아요. 근데 어떻게 권위가 서겠어요? 그런 분들은 엄격한 기준이 지켜져야 한다고 보는데. 근데 뭐.. 스트레스 쌓이죠.




본격적인 인터뷰. 두 사람의 죽음부터 시작했다. 혹여 모르고 넘어 간 이야기는 없는지, 일일이 확인해두고 싶었다. 그래야 다음으로 넘어갈 수가 있을 거 같았다.

총 : 위장전입은 패스포트 같아요. 자기들 클럽에 가입을 위한. 하하.. 자 이제 재미없는 정운찬 이야기 그만하고 직접 내부에서 겪은 노무현 대통령 서거 이야기부터 해보죠. 거기서부터 풀어야 할 거 같아요. 언론에 제대로 보도되지 않은 이야기 같은 것도.

그날이 5월 23일 토요일이었어요. 제가 뉴스로 못 보고 전화를 받았어요. 노무현 대통령이 뛰어내렸단다. 그래서 내가 뻥까지 말라고. 그럴 리도 없다고, 그럴 사람도 아니고. 노태우를 잘 못 봤겠지. (웃음) 개인적으로 굉장히 받아들이기 힘들었는데. 언제 어떻게 처음 들으셨어요?

한 : 그날 아침에. 비서가 전화를 했어요. 저는 아침에 티비를 틀거나 잘 안하는데..
총 : 이명박 나오니까.(웃음)

한 : 예. (웃음) 집에 있었는데. 비서가 전화를 해서 노 대통령이 떨어졌다.. 그런 얘길 하는 게 아니라 ‘빨리 티비 틀어보세요!’ 그러는 거예요. ‘무슨 일이냐’ 그러니까. 그냥 ‘빨리 틀어보세요!’ 그래서 끊고 티비를 틀었어요. 그 때는 사망설 이전에 초기에 추락한 듯.. 실족.. 이래서 늘 산을 가시니까 사고가 난 줄 알았어요. 그래서 이게 한 시간 지나니까 추락, 자살설, 사망설이 이런 것이 계속 나는 거예요. 하...(깊게 한숨) 제가 그때 들고 있던 물건을 떨어뜨렸어요. 그리고 털썩 주저 앉았어요. 그래서 전화를 했어요. 안희정 씨한테 했어요.

총 : 왜 안희정 씨부터?

한 : 제일 빠를 것 같아서. 소식이. 안희정 씨는 생각보다 담담하게 ‘사실인 것 같습니다. 빨리 내려가야 하겠습니다’ 하는데 제 손이 벌벌벌 떨려요. 하...(다시 깊게 한숨) 그래서 그대로 가방 들고 비행기를 예약해서 갔어요. 가서 양산대학병원에 내려갔더니 이미 다 많이 와 계시더라구요. 문재인 실장이 중심에 서 가지고 여러 가지 상황을... 그 사람들 보니까 걷잡을 수 없이 마음이 동요가 돼서... 그 때부터 시작을 한 거예요. 시작을 했는데 그 때까지만 해도 이게 본인이 뛰어내리신 건가. 실족한 것인가...

이 대목에서 그녀는 한 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눈물을 그렁그렁 단 채.

그런데 문재인 실장이 직접 보시고 말씀을 해주셨어요. 자살이라고. 제가 내려갈 때만 해도 유서가 있다는 말을 못 들었는데 내려가니까 안희정 씨가 ‘유서가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전 유서가 모든 것을 밝혀주는 구체적인 내용이 있지 않을까. 내 통밥으로는. 사건의 경위라든지, 내가 왜 떨어지게 됐다든지. 모든 프로세스나 내용에 대해서 그런 게 적혀있는 유서인가보다. 내가 판단을 그렇게 혼자 했어요.

그래서 ‘그것이 밝혀지면 좋겠다.. 속상하고 억울하다.. 유서가 있어서 다행이다..’ 그렇게 생각을 했죠. 근데 다음 날인가 유서를 공개한다고 해서 딱 보니까 그게 아닌 거예요. 제가 짧은 생각이었죠. 반성을 했어요. 너무 속이 상하고 너무 억울하니까 그렇게라도 풀었으면 하는 심정이었는데. 그런데 그런 유서였어요. 그 유서를 계속 보니까. 외우잖아요. 짧으니까. 그런데 계속해서 곰곰이 생각을 해보니 그 안에, 내가 생각했던 이 억울함을 풀어야지.. 하는 마음보다 수백 배의 함축된 함의가 그 안에 들어있다는 것을, 자꾸자꾸 보면서 깨닫게 됐죠.

많은 분이 오면서.. 진선? 스님이시던가. 그 스님이 오셔 가지고 그 유서는 성불한 사람의 유서라는 거예요. 짧은 문장 속에 인생의 모든 것을 담아냈다고.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이야기하고. 나중에 나도 생각이 짧았다. 역시 노무현 대통령은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진 것보다 훨씬.. 음.. 뭐라고 그럴까.. 알려진 것은 직설법을 쓰고 말을 참지 못해서 팍팍 내뱉는 그런 얕은 사람으로 많이 왜곡 됐잖아요.

그런데 이번 장례 과정에서 자꾸 새록새록 노무현 대통령의 여러 가지 면을 보게 되는데 이 분이 참 철학적이고 내면의 세계가 깊었어요. 그런 내면의 세계는 스스로의 인생관과 연결되어 있는 것 같아요. 어렵게 살고 항상 비주류로 살고 언제나 대접받지 못하고. 우리 서민들, 백 없는 사람들과 처지와 같은데. 그런 것을 어떻게 좋게 만들까. 끊임없이 책을 보고 생각하면서 연결된 인생역정. 그것이 마지막에 몇 문장으로 축약된 게 아닌가, 그런 생각을 하게 됐어요.

총 : 제가 나중에 주변 사람들한테 들은 바로는, 당시 병원에서 다들 경황이 없고 자살인지 추락사인지도 불분명하고 어찌해야 할 바를 몰라 패닉상황일 때 총리님이 가서 상황을 정리하고 회의를 주재하셨다고 들었는데, 가기 전에는 물건 떨어뜨릴 만큼 경황 없으셨다면서 어떻게 현장 가서는 그렇게 침착하셨습니까.

한 : 하~(깊은 한숨) 가서 나도 그랬죠.. 다들 북받쳐 오르니까.. 다들 눈이 벌게 있고 그런 상황이었는데.. 나 자신도 잘 모르는 면이 제게 있는 것 같아요. 급박한 상황이나 어찌할 바를 모르는 난관의 상황, 위급한 상황이나 이럴 때 제가 좀 담이 있는 것 같아요. 간이 큰 것 같아요. 의사가 제가 간 큰 여자라고 합니다.(웃음)

당시 주변 이야기를 종합하면, 그는 양산으로 내려가자마자 곧장 중심 역할을 했다. 누군가의 표현에 의하면 한 총리가 움직이면 ‘홍해가 갈라지듯’ 사람들이 길을 비켜주었단다.

총 : 하하하. 물리적으로 크십니까?
한 : 네. 물리적으로 크대요. (박장대소)

총 : 하하하

한 : 아니~ 간대폐소. 이런 말 못 들어보셨어요? 한의사한테 들었어요. 제가 간이 크고 폐가 작은 체형이라고. 그래서 간 큰 여자라고. (웃음) 제가 조금 담이 있어요. 담이 있다고 하나? 담대하다고 그러나.. 이건 아니다 생각하면 바로 포기합니다. 결단할 때.

노무현 대통령이 저 총리 시킬 때 ‘내가 한 총리를 총리시킨 이유가 하나 있다.’ 하셨는데.. 제가 환경부 장관을 1년 했어요. 그 때 총선이 있었어요. 그 때 열린우리당이 47석인가 이렇게 됐을 때. 이겨야 하잖아요. 인지도 있는 사람들은 많지 않고. 그러니까 장관들 몇 사람을 포진시키고 싶으셨던 거죠. 그래서 노무현 대통령은 ‘당신 총선에 나가시오’ 직접 표현은 안 했지만 ‘큰 뜻을 품어 보시죠..’ 뭐 이런 식으로.

총 : 하하하. 총선 나가시죠 이렇게는 안하고.. (웃음)

한 : 네. 그렇게 몇 사람에게 하셨어요. 내가 알기로는 강금실, 이창동... 한명숙도 껴 있었고. 그런데 다들 엉덩짝 딱 붙이고 들썩을 안 하는 거예요. 그런데 제가 어느 날 사직서를 써 들고 가서 대통령께. 내가 떨어지거나 말거나 그런 거 생각 안하고 내가 내려간다. 딱 결단을 하고 사직서 들고 대통령께 갔어요. 갔더니 되게 좋아하는 거예요. 좋다 말은 직접 안 하지만 내가 봤을 때, 기분이 되게 좋은 거지. 이 여자가 하는구나. 그래서 막 본인이 전화를 걸어 가지고 처리하는 데가 어디더라.. 장관을 그만 두고 처리하는 절차가 있는데.. 전화를 직접 하시고. 기분이 좋으신 거죠.

총 : 하하하. 그 새 마음 바뀔까봐. 당장 직접 전화. (웃음)

한 : 그렇게 당에 내려갔는데. 나를 써먹어야 하잖아요. 어디다 써먹을까 하다가. 영등포 가라 송파 가라. 여론조사 넣고 그러다가. 결국은 보좌관들이 홍사덕 가는 데만 피해라. 그럼 다 살 수 있다. 그랬는데 홍사덕 일산 간다고 딱 결정을 하니까, 당에서 거기에 넣어 버린 거예요. 그런데 나는 이길 자신이 있는 것도 아니고 져도 이겨도 이왕 이렇게 결단했으니까 하자. 그런데 보좌관들은 실망하고..

그래서 내가 ‘괜찮아요. 합시다!’ 하고 딱 두 달 남았는데 한 달은 인사하고, 선거운동 딱 한 달만 했어요. 그런데 이겼죠. 이변이 났죠. 내 생각에는 그때 대통령께서 ‘자기를 버릴 줄 아네.’ 이렇게 입력이 되신 것 같아요. 총리로 지명할 때 ‘내가 그 때 기억이 있습니다. 결단하고 버릴 줄 알고 그런 리더십이 필요하다’ 그러셨던..

당시 보좌진들에게 물었더니, 그저 실망한 정도가 아니라 다들 필사적으로 반대했단다. 홍사덕 후보는 자신에 대해 단 한 번의 네거티브 발언도 하지 않는 한 총리에 대해 나중에 “한명숙은 흠결 없는 정치인”이라고 했단 일화가 있다.

총 : 그래서 노 대통령이 한 인터뷰에서 ‘내게 뽑으라면 차기는 한명숙이다’고 하셨다잖아요?

한 : 오마이뉴스..
총 : 그 얘기는 다음에 본격적으로 물어 보겠습니다. 하하. 혹시 20여 년 전에 결혼 6개월 만에 남편 잡혀가고 혼자 생활을 꾸리며 13년 반을 버티고 나니 그 사이 간이 비대해지신 건 아닌가.. (웃음)

한 : 그런가 봐요.(웃음)

총 : 다시 봉하 마을로.
한 : 그게 토요일이었는데 아무 결정도 못하고 있는 사이에 사람들이 미어지게 오는 거예요. 봉하에. 봉하, 아시겠지만 작고 초라하잖아요. 그런데 사람들이 미어지게 오고. 그래서 병원에서 영정 세우고, 모시고, 봉하에다 시신을 옮겨 안치했죠.

총 : 그 때 병원에 안치 된 상태로 그냥 가족장으로. 그러니까 이 정권에게서 지원 받아 장례하지 말고. 이 정권에 당한 것만도 분하고 억울한데 우리끼리 장을 치르고 그 분노를 현 정권에 대한 투쟁의지로 연결하자.. 그런 의견도 분명 있었을 텐데.

한 : 의견이 분분했어요. 한 2,30명이 늘 모여 회의를 하고 했는데. 그때 가족장으로 하자. 말씀하신대로. 우리가 뭐 하러 이 정부에다 아쉬운 소리 하느냐. 그리고 제가 총리 때 최규하 대통령 영결식 겪어봐서 아는데 규정이 총리가 장의위원장이 되요. 그러니까 한승수 총리가 장의위원장이 될 텐데 우리가 왜 그렇게 해야 되느냐. 그렇게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었고.

총 : 마지막까지도.

한 : 네 많았죠. 만약에 국민장을 하는 경우에는 이 정부가 하자는 대로 좇아가야 하는데 우리 의견이 반영되겠느냐 하는 말도 있었고. 특히 젊은 사람들이 그런 주장을 했죠. 그런데 김대중 대통령께서, 우리한테 직접 와서 말씀하신 건 아니지만, ‘국민장으로 해야 한다.’는 말씀이 있으셨어요.

특히 노무현 대통령의 큰 아들 노건호 씨가 강하게 반대했다고 한다. 국민장으로 하면 장례식에 참석하지 않겠다고 하면서까지. 결국 한 총리가 강경 친노와 그들을 달래 국민장을 받게 했다.

김 : 김대중 대통령이 그랬었군요.

한 : 네. 그런 영향도 있고. 또 한 편으로는 가족장으로 하면 모든 비용을 감당해야 되는데 이렇게 많은 국민들이 밀려드는데 어떻게 감당을 하느냐. 그런 현실적인 고민도 있었고. 그래서 원칙을 정했는데 한승수 총리 1인 장의위원장으로는 안 된다. 최규하 대통령은 퇴임하신 지도 오래 됐었지만 노 대통령은 퇴임하신지 불과 1년 밖에 안 됐고 돌아가신 연유도 다르다. 우리 측 의견이 반드시 반영되어야 하고 우리 쪽에서 공동 장의위원장도 해야 한다. 그렇게 원칙을 세우고 정부 측과 협의를 한 거예요.

그리고 누가 장의위원장을 할까, 그런 얘기가 나왔었죠. 우리끼리 결정해야 하는데, 저 쪽에서는 한 명을 결정해달라고 하는데. ‘우린 총리가 둘이니 한승수 총리까지 셋으로 하자’ 그랬더니 ‘원래 한 명인데 두 사람도 아니고 세 사람이 하는 건 너무 무리다.’ 그래서 저는 이해찬 총리님 하시면 좋겠다 그랬는데, 왜냐면 딱딱 끊는 걸 잘하시고 투쟁도 잘하시고. 그런데 마지막 총리가 하는 게 관계다, 그런 말도 나오고 유시민 장관이 대통령 역정이 고단하셨는데 가시는 길이라도 편안하게 보내드리려면 편안한 분이 하면 좋겠다..

총 : 총리님이 ‘내가 하겠다’ 한 게 아니고?
한 : 저는 뺐죠.
총 : 내부 논의 과정에서 그렇게 결정이 된 거네요.

한 : 네. 뭐 그런 일은 거절할 수 있는 일도 아니니까. 그래서 제가 장의위원장이 되고. 그 이후부터 문재인 실장이 운영위원장이시니까 실질적인 실무는 그 쪽하고 실무단이 하고. 저는 한 총리 하고 행안부 상대로 담판을 담당했죠.

그런데 그 사이 사람들이 너무나 많이 오는 거예요. 감당할 수가 없는 거예요. 정동영도 밖에서 막지. 한승수도 쫓겨나지. 조의라는 것은 이념이 달라도 받아들어야 하는 건데. 그래서 안에서는 걱정이 컸어요. 밖의 상황이 컨트롤이 안 되니까. 아직 장의위원장도 결정이 안 되고 있었으니까. 그렇게 이틀 동안 시행착오를 겪다가 장의위원장이 정해지고 나서 노사모 만나고 협의를 해서 그 다음부터는 진행이 되기 시작했는데...

그런데 저는 그 어마어마한 일의 중심을 잡아야 하는 역할이다 보니까, 그때는 절대 울지를 못했어요. 꼬마도 오고 할아버지도 오고 농민도 오고 별별 사람들 다 오잖아요. 그 사람들 마음, 표정, 울부짖음이 전부 다 전달이 되요. 거기 30분쯤 서 있으면 눈시울이 뜨거워지지 않을 수가 없어요. 하지만 제가 질질 울고 다니면 어떻게 중심을 잡겠어요. 그래서 가슴으로만 우는 거예요. 의연하게 하려고 했어요. 담담하게 했어요.

이 대목에서 다시 목이 메어 한참 말을 잇지 못했다.

그렇게 치렀죠. 치루고... 딱 한 번.. 이광재 의원이 찾아와서 통곡을 하는데 뭐 어떻게 몸을 못 가누더라구요. 안기면서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너무 죄송합니다. 우리가 못 지켜져 드려 가셨습니다.’.. 그렇게 이광재 의원과 부둥켜안고 운 것 이외에는 제가 우는 걸 안 보인 것 같아요. 요즘 몸이 안 좋아서 그런지 자꾸 생각이 나 가지고 어제도 자꾸 그때 생각이 나니까. 나 집에 혼자 있는데.. 침대에 누워 가지고.. 소리 내서 울었어요.. 남들 다 울고 지나간 다음에.. 이제야 자꾸 생각이 나서...

총 : 그 때 못 우셔가지고..
한 : 맺혀서. 지금 우네요..

이 대목에선 내가 말을 잇지 못할 뻔 했다. 인터뷰하다 내가 울컥 한 건 처음이다.

총 : 정부하고 많이 부딪혔죠?
한 : 제가 정부 쪽 한승수 총리하고 행안부 장관하고만 상대를 했어요. 제가 생각할 때는 정부 쪽에서도 기본적으로는 어떻게 해서든지 이걸 큰 문제없이 끌고 가야겠다는 게 있었어요. 하지만 이 일로 인해 제2의 일이 일어나면 어떡하나 하는 의심과 두려움이 정부에는 있었어요. 그래서 될 수 있으면 축소하고, 될 수 있으면 막아보려고 노력을 했죠.

총 : 노제도 안 된다고 했었죠.

한 : 네. 시민광장을 장례식 전까지 차로 둘러막고. 대한문 앞에 분향소 가는 돌담길 밖에도 제가 직접 가봤는데 완전히 차로 막았거든요. 그래서 제가 많이 항의했습니다. 그리고 노제는 열어주나마나 우리는 한다고. 또 조계사에서는 만장 이 만개를 제조를 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그것도 어렵다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행안부 장관에게 뭐라 했냐면. ‘그렇게 의심이 들면 2만개 만장 드는 걸 행안부가 직접 주관해라. 공무원을 뽑아 가지고, 군인을 뽑든지 당신들 마음대로 그러면 문제가 없을 거 아니냐. 당신들이 뽑아라.’

그때 영부인께서 저에게 - 하루에 한 번씩 영부인을 뵙고 말씀도 드리고 그랬는데 - ‘당당하게 해 달라’ ‘당당히 어깨 펴고 가게 해 달라.’ 이거 하나 하고 ‘대통령님 편히 가게 해 달라. 문제 발생하지 않게 해 달라.’ 이렇게 두 가지였거든요. 이걸 지키려고 최선을 다했어요. 그래서 행안부 장관이, 죽창이라고 하죠?

총 : 대나무 잘라 무기 만든다고.

한 : 네. 그래서 ‘드는 사람을 행안부가 해라’고 그렇게까지 했어요. 그날 밤 12시까지도 계속 안 된다고 하다가 새벽 1시쯤 났을 거예요. ‘내일 아침 8시에 광장을 열겠다. 만장 허락하겠다. 다만 만든 걸 전부 플라스틱으로 다 바꾸고 당장 내일이라 공무원 동원하는 거 어려우니까 우리보고 알아서 하라’고.

총 : 만장이, 새벽 한 시니까, 당일에야 정해진 거네요? 그럼 노제는?
한 : 노제도 마지막 순간에 결정된 거예요. 내가 하도 안 된다고 하길래 나중에 뭐라고 얘길 했냐면 ‘수많은 국민이 가슴에 한을 갖고 있는데 그 한을 시민광장에서 풀고 가게 하는 것이 당신들에게 좋다. 한이 맺힌 채로 슬픈 사람, 억울한 사람 풀지 못하고 가게 한다면 나는 그 뒤를 책임질 수 없다. 그러나 순조롭게 일이 잘 되면 최선을 다해 편안하게 보내드리고 싶은 게 우리 생각이다.’ 그렇게까지 말했는데, 결국 행안부 장관이 오케이한 게 12시에서 1시 사이였던 걸로 기억해요. 당일 결정된 거죠.

총 : 혹시 마지막 순간에 오케이 하도록 만든 정부 내 인물이 누군지 아십니까? 누군가는 그렇게 주장했으니까 마지막 순간에 그렇게 결정이 됐을 텐데.
한 : 행안부 담당이니까 행안부 장관이 얘기하고 총리하고도 했겠죠.

총 : 이명박 정부 의사결정 구조를 가만 보면 실제 장관은 최종결정권이 없고 중요한 결정은 대통령과 주변 몇이 다 하는 것 같은데..
한 : 그건 잘 모르겠어요. 저는 행안부와 총리 라인만 접촉을 했으니까.

누굴까. 궁금하다.

총 : 어쨌든 안 될 수도 있었던 거네요?

한 : 안 열어주면 다른 방법으로 할 수밖에 없었죠. 그랬을 때 수많은 사람과 그 임펙트를 정부에서도 생각했을 거예요. 뭐 정부가 그렇게 밀려서 해줬다고밖에 할 수가 없죠. 그 수많은 사람들이.. 제가 토요일 일요일, 5월 23일 24일은, 주말이니까 사람이 많을 수밖에 없고 월요일부터는 줄어들 거라고 생각을 했었어요.

근데 월요일에는 더 많이 온 거예요. 그 뙤약볕에 10분도 서 있기 어려운 뙤약볕에 4,5시간 정도 앉을 데도 없고 서서 기다리는 거 아니에요. 그리고 나서 100명씩 그 좁은 데서 한 10초, 20초 하고 돌아가는 건데 어느 누구도 불평하는 사람이 없었어요.

중간에 집중 호우가 한 번 왔어요. 한 한 시간가량. 당시 빌라에서 회의를 하다가 집중 호우 때문에 베란다에 물이 차 가지고 방으로 물이 들어오려 해서 빠게스로 퍼 나르고 했던 기억이 있는데, 그 비를 다 맞으면서 미동도 안 해요 미동도 사람들이. 어떻게 저런 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 할 정도로. 우리 모두가 의아해 할 정도로. 참 이상한 일도 다 있다... 그런 상황이었으니까요.

총 : 왜 청와대 안까지 운구도 논의 됐었잖아요?

한 : 네. 논의 됐어요. 운구 지나가는 것이 본인이 살아온 지역을 지나가니까. 운구가 지나가는데 청와대 문 앞을 돌아서 나오겠다고 정부에 제안을 했었죠. 근데 행안부 장관이 엄청난 인파가 몰리기 때문에 청와대 보안 문제로 어렵다고.

총 : 김해 공설 운동장 이야기도 있었잖아요?

한 : 네. 근데 여러 가지 문제로 한계가 있었어요. 국민장으로 안 한다면 모르지만 국민장으로 결정한다면 서울로 가야한다 이렇게 생각했죠. 그리고 교통 문제도 있었어요. 김해에서 하는 경우에 수많은 사람들이 여기로 와야 하는 데 그걸 감당할 수가 없고..

총 : 전 당일 영결식은 안 보려고 했었는데..
한 : 뭘로 보셨어요?

총 : 티비로. 노제에 참석하려고 나가려다가. 영결식이야 나중에 보지 뭐.. 그런데 점점 집중이 되더라고요. 총리님 조사도 그렇고 백원우 의원 튀어 나오고. 하이라이트였죠. (웃음) 그런데 그 장면이 생중계 때는 잘 안 잡혔어요. 약간 소리만 나고. ‘어 뭐지뭐지’하는데 조금 있다가 보니까 다시 다 앉아 있고. 당시 상당히 궁금했죠. 아니 백원우 의원을 어떻게 진정시켰을까. 어떻게 하셨어요? 진정 시킨 사람이 총리님이라고 들었는데. 하하하.

한 : (웃음) 뭐 당시 순간순간이 위기촉발이었어요. 거기 가서 여러 가지가 참 신경 쓰였던 게 우선 김대중 대통령이 몸도 안 좋으신데, 말도 안 되는 뙤약볕이었거든요, 두 시간을 거기 계시는 게 참 신경이 많이 쓰였고. 이명박 대통령이 옆에 앉으셨는데 이명박 대통령이 이 우리의 상황을 보고 뭘 느낄까 이런 것도 신경이 쓰이고. 또 우리 쪽 사람 중에 치밀어 오르는 사람들이 한두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에 무슨 일은 없을까. 예민한 안테나가 그렇게 세 갈래로 뻗어 있었어요.

그런데 제가 조사를 할 때... 음... 조사와 관련된 이야기부터 드릴 게요. 조사는 제가 다른 일을 하는 동안에 윤태영 전 대변인이 기초를 잡았어요. 거기에 보탠 건데, 제가 대한문 분향소를 두 번 갔어요. 거길 가면 사람들이 노란 리본에 노무현 대통령에게 보내는 편지를 써서 쭉 붙여놨었잖아요. 제가 돌담 끝에서 전경차가 쫙 막고 있던 그 안으로 들어가서 돌담을 따라 쭉 걸었어요. 리본도 다 풀어보고. 그러면서 ‘조사라는 게 별게 있겠는가. 시민들이 마음 담아 쓴 이게 다 조사다. 일부러 만들어서 쓸 필요가 없다.’ 그렇게 생각을 했어요.

그때 보니까 제일 많은 게 ‘못 지켜드려서 죄송합니다.’에요. 그리고 ‘당신과 함께해서 행복했습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 그래서 그 말을 조사에 넣었어요. 그리고 영결식장 가는 길에 보니까 노란 풍선도 많고 사람들이 엄청나게 모여 있는 거예요. 그래서 ‘노무현 대통령님. 대통령님 당신을 위해 모인 저 수많은 시민들이 보이십니까. 노란풍선이 보이십니까.’하는 말도 바로 직전에 넣었고.

그렇게 해서 제가 조사를 하려고 그 자리에 섰는데... 갑자기 너무나 기가 찬 거예요. 아니, 노무현 대통령님이.. 최규하 대통령 영결식(2006년) 할 때 제가 총리로 조사를 했거든요. 노무현 대통령이 그 때 제 뒤에서 대통령 자리에 앉아 있었다구요. 근데 이 사람이 지금 어딨냐구요. 그래서 제가 갑자기 ‘노무현 대통령님, 지금 대체 어디 계신 겁니까?’ 이렇게 한 거예요. 그건 그냥 즉석에서. 너무 기가 차서. 그래서 대통령님 지금 어디에 계십니까. 그렇게 시작을 했어요.

총 : 그러니까 그 조사 첫 부분은 아무도 몰랐네요.

한 : 네, 몰랐죠. 그리고 그때 제가 목표로 했던 게 그저 끝까지 다 읽는 거다.. 그거였어요. 끝까지 다 못 읽을까봐. 중간에 울컥해서 못 읽을까봐. ‘어떻게 해서든지 다 읽어야 한다.’고 다짐했었죠.

총 : 그 조사가 없었으면 큰 일 날 뻔 했죠. 전 그때 한승수 총리 조사 듣고는 그냥 나가려고 했거든요. 뭐야 저게~ 씨바. 그러면서. (웃음) 그러다 총리님 조사 첫마디 듣고 다시 앉았어요. 그거 없었으면 큰일 날 뻔 했다는...

한 : 그런데 그렇게 조사하고 앉았는데 바로 백원우 사건이 난 거예요.
총 : 갑자기 튀어나왔죠.

한 : 갑자기.. 상상을 못했는데. 튀어나왔는 데 보니까 백원우인 거야. 보니까 벌써 입이 딱 막혔는데 얼굴이 백지장이더라고. 그 부근의 사람들이, 제일 마지막 블록에 앉았던 사람들이 대체로 울컥하는 사람들인데 그쪽에서 소리가 나는 거야. 살인자는 물러나라고.

총 : 백원우 의원만 한 게 아니에요?
한 : 아니에요. 그 뒤에서 소리가 막 지르고.
총 : 그건 방송에선 제대로 안 잡혔는데.

한 : 아~ 살인자 얘기도 나오고. 어떤 할머니, 할머니인데. 눈물 흘리면서 무슨 ‘새끼..’한 거 같아요. 웅성웅성 소리가 나고.

총 : 고양이 새끼라고는 안 했겠죠. (일동 박장대소)

한 : 내가 이러다가는 뭐가 일어나겠구나. 그런 생각이 딱 들어서. 벌떡 일어났어요. 일어나서. 그게 담인 것 같아요... 그 사람들 앞에 서서 말은 한마디도 안 했어요. 표정으로만 호소를 했어요. ‘편안히 보내드리자. 당신들 심정은 내가 안다. 편안히 보내드리자.’ 그렇게 하니까 좀 가라앉았어요. 그래서 다시 앉았죠.

그런데 다시 백원우가 쫓겨 갔다가 다시 제일 앞 제자리로 돌아와서 앉는 과정에서 김현 부대변인인가가 막 소리 지르면서 경호원들은 뒤로 가라고 하면서 다시 웅성웅성 소리가 나서. 다시 일어나서 백원우 앞에 가서 손을 꽉 잡고 뭐라고 말을 했는지는... 비밀이고요. (웃음)

총 : 으하하하. 그걸 말씀해 주셔야죠, 그거를.

한 : 당신 의견이 전달됐으니 이제는 가만있자, 딱 눌러 놓고 일어났더니. 뒷줄에 앉아 있던 사람들이 펑펑 우는 거야. 펑펑 우는 거야 막. 분하고 그러니까. 펑펑 우는데 일어나서 내가 손으로 ‘잠잠히 하자’ 하고 한참 그 앞에 서 있고 김현은 문재인 실장이 들여보내고. 내가 경호원 보고 우리가 자제할 테니 뒤로 가라고 해서 경호원은 뒤로 가고 정리가 됐죠.

총 : 그 일 직후에 이명박 대통령한테 가서 뭐라고 말씀을 하셨잖아요?

한 : 아니 그건 다 끝나고 일어났을 때 제가 이명박 대통령한테 ‘사람들 심정이 아파서 그런 거니 이해해 달라.’ 그 후에 문재인 실장이 와서 ‘죄송하다.’ 하니까 ‘개의치 마세요.’ 그러더라구요.

총 : 그때 백원우 의원에게는 뭐라고 하셨어요?
한 : 뭐라고 했을 것 같아요? (웃음)
총 : 잘했다. 하하하. 참 잘 했어요. 별표 다섯 개. (박장대소)


(뒤에 있던 보좌진이) 백원우 의원이 나중에 총리님이 나더러 잘했다고 하셨다고, 자랑했답니다. (일동 폭소)
한 : 잘했죠.(웃음)

정리하자면, 그때 이런 이야기가 오갔단다.

“잘했어, 잘했어. 전달됐으니 이제는 가만있어”

총 : 백원우 의원이 그거 안 했으면 어떡할 뻔 했어요. 그때 사람들 울화통 치유됐어요. 그나마 그것 덕분에. 한 50만 명 정도는. (웃음) 그리고 또 영결식의 결정적 장면 중 하나가 김대중 대통령이 유가족 앞에서 갑자기 울음을 터트렸잖아요.

당시 수행한 이들의 전언에 의하면, DJ는 영결식 후 집으로 돌아가서도 계속해서 대성통곡 했다고 한다.

한 : 아휴... 난 그렇게... 하실 줄 몰랐어요. (이 대목에서 다시 목이 메어 잠긴다) 제가 당시 전화를 여러 번 했어요. 김대중 대통령하고. 전 김대중 대통령이 3개월 만에, 생각보다 빨리 돌아가신 건 노무현 대통령 서거의 충격이 원인이 되었다고 생각해요. 6월 11일인가 615, 9주년 행사였는데. 김대중 대통령이 일 년마다 사람을 선임해요. 올해는 당신이 행사위원장이라고. 근데 올해는 저보고 행사위원장 해달라고 하셔서 준비도 있고 해서 평화센터도 가고 대통령님도 뵙고 전화도 하고 그랬었죠. 당시 김대중 대통령은 이렇게 얘기를 했었어요.

“너무 꿈만 같아요. 정말 내가 꿈을 꾸는 것 같아요. 우리가 10년 동안 해놓은 남북관계 신뢰나 남북관계 평화 이런 걸 어떻게 1년 만에 이렇게 엉터리로 돌려놓을 수가 있는가. 이건 말이 안 되는 거예요”

그렇게 직설법으로 말씀하셨고 이명박 대통령의 정책을 정면으로 비판을 하시고 그랬거든요. 그 걸 세 가지로 말씀하셨는데 민주주의 후퇴, 서민경제 후퇴 그리고 남북관계의 후퇴. 어떻게 이렇게 만들어 놓을 수가 있느냐. 그러면서 본인은 ‘나는 이제 늙고 힘이 없다. 그래서 나 혼자는 안 되고 노무현 대통령과 힘을 합쳐서 목소리를 내려고 했다.’ 노무현 대통령을 곧 만나서 협의해가지고 ‘우리 뭔가 해보자’ 이렇게 하시려고 했다는 거예요. 노무현 대통령과 노무현 대통령 사람들, 김대중 대통령과 김대중 대통령 사람들과 함께 ‘그걸 꼭 하려고 했는데 이렇게 돌아갈 수가 있느냐. 내 반이 무너졌다.’ 그렇게 말씀하셨는데. 그 때부터 김대중 대통령이 조급증이 생기셨어요.

그래서 저는 그때부터 김대중 대통령이 이러다가는 돌아가시고 말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김대중 대통령 울분이 아주 여기(목)까지 올라오시고 노무현 대통령과 같이 뭔가를 하려고 했었다는 말씀만 하시면.. 우시는 거예요. 그리고 굉장히 조급해져 가지고 ‘나는 힘은 없고 늙었는데 이걸 어찌 해야 하나.’ 하는 생각을 항상 하셨고 그래서 만나는 사람마다 ‘젊은 너희들이 뭐 하냐. 젊은 사람들이 해야지.’ 저보고도 불러다가 제가 젊지도 않은데. (웃음) 제가 60대 중반인데.. 젊은 사람이 해야 한다고 그러시고. ‘나 같은 사람도 있잖아.’ 계속 그러시다가 615 행사 때 행동하는 양심 얘기를 말씀하신 거예요.

615 행사 때 굉장히 강하게 말씀하셨거든 독재자라는 말씀도 하시고 행동하지 않으면 악의 편이다 말씀하셨는데. 근데 말씀하시는 게 벌써 그 전에 또렷하게 발음하시던 것하고는 달랐어요. 말이 안 나오는 거예요. 정황은 너무 심각하고 그래서 말씀은 하셔야 하는데 혀가 안 돌아가는 거예요. 건강이 팍팍 눈에 띄게 나빠지시더라구요. 그러면서 ‘행동..하..하는.. 양..양심이.. 되..되어야 합니다!’ 그런 식으로.

원래 착착착착 박력 있게 말씀하시거든요. 그래서 항상 참 대단하시다 그랬었는데. 팔십 몇 살 나신 분이 웬 천팔백오십몇년 하는 식으로 년도를 다 외우고 그리고 ‘1,000명이 모였습니다.’ 그렇게 말 안 해요. 꼭 ‘1185명’ 이런 식으로 하지. 그래서 우리는 김대중 대통령의 말씀을 듣고 나오면 항상 아이고. 하여튼 참~...

총 : 징해요. 하하하.

한 : (웃음) 그런데 건강이 탁탁 나빠지시는 게 눈에 띄는 거예요. 그 행사 끝나고 한 열흘 쯤 후에 행사위원들 고맙다고 부르셔서 모였을 때, 한 50명, 그 때 말씀을 하시는데 ‘내가 요즘 너무 처참하고 통탄스럽다’고. ‘내가 아내 손을 붙잡고 자기 전에 하나님께 기도하는데 울면서 기도합니다.’ 그러면서 또 우시는 거예요. ‘나는 늙고 힘든데 나라는 이렇게 가고 어떡합니다.’ 당신 건강이 많이 쇠퇴해 간다는 것을 느끼신 것 같아요. 그런 후에 제가 무슨 말씀 드릴게 있어서 면담신청을 했어요. 그런데 ‘많이 안 좋으셔서 인터뷰도 취소하고 그러니 기다려라, 기다려라’ 그러다가 그렇게 병원에 들어가신 거예요.

노무현 서거 이후 DJ가 그렇게 울었단다.

총 : 노무현 대통령 노제 때 저도 길바닥에서 운 건 다섯 살 이후 처음인 것 같은데. 근데 제가 초자연적인 현상을 믿지는 않지만, 오색채운. 그게 한 총리님이었던 것 같은데 저거 보라고 하신 게..

한 : 네네. 광장에 사람이 꽉 찼는데 조그만 천막을 치고 거기 가족들 앉게 해서 노건호 권양숙 여사님 그리고 제가 앉아 있는데 제가 처음 본 게 아니에요. 옆에서 누군가가 무지개 떴다 하는 거예요. 그래서 무심코 봤더니, 희한하게, 무지개라는 건 물보라가 있을 때 뜨는 건데.. 파란하늘에 하얀 구름이 있는데 거기 너~무 선명하게 떠 있는 거예요. 제가 그걸 확인하고는 여사님하고 노건호 더러 저기 쳐다보라고 손으로. ‘저기 무지개가 떴다’고 하니까 다들 신기해하면서 ‘무지개로 저기 오셨나보다’라고 여사님이 하시더라구요. 너무 반가워하면서.

총 : 그때 몇 마디 오가서 뭐라 했을까 했더니.. 그런 말들이었군요. 하하.

한 : 노무현 대통령이 무지개로 이 많은 사람들 중에 오셨구나. 왜 바람이 불면 오신 줄 알겠습니다. 바람이 분다에서.. 그렇게 바람으로 오실 수도 있는데, 그날은 무지개로.. 근데 한참 떴어요. 가족들이 다 보고 다들 위안이 됐어요. 많이 위안이 됐어요.

총 : 위안이 됐군요. 다행이네요. 그리고 사람들이 못 가게 막았죠.
한 : 아휴~ 몇 시간이었어요.
총 : 거기서 차 안에서 계실 때..

한 : 아니에요. 거기에서 나왔죠. 나와서 만장하고 같이 걸어서 갔어요. 영부인하고는 타고, 저는 행안부 장관이랑 걸어서 갔는데 왜 걸어서 갔냐면 너무 복잡하니까 혹시라도 무슨 일이 발생할까봐 그런 일이 발생하면 즉각 처리해야 하니까 행안부 장관하고 저는 걸어서.. 그래서 문재인 실장하고 손을 꼭 붙들고..

이때 서원에 있던 어떤 이 : 사귀시는 줄 알았어요. 두 분이 손을 꼭 잡아서. (일동 폭소)

한 : 손을 꼭 붙들고 이리로 밀렸다 저리로 밀렸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별별 소리를 다 했어요. ‘문재인 파이팅. 한명숙 총리님 우리를 지켜주세요.’ 별별 소리가 다 있었는데.. 어떤 사람은 ‘전국정당 만드세요. 흩어지지 마세요.’ 이런 얘기들. 그렇게 몇 시간이었는지 몰라요. 걸어가다가 시간이 너무 지체되니까 화장장을 하는 시간이 세 시간인가 두 시간인가 지체한 거예요.

근데 앞에 어떤 팀들이 있었냐하면 ‘노무현 대통령 화장하면 안 된다’하는 무슨 인터넷 카페 무슨 회원들이 있었나 봐요. 그런 사람들이 지휘를 하는 거예요. 못 가게. 막 못 가게 지휘를 하고 앞을 가로 막고. 앞에다가 쳐 놓고 절하고.. 뭐 화장하면 안 된다고. 그렇게 막는데 세 시간인가 지체를 하니까 행안부 장관하고 의논을 했어요. ‘제가 나가서 풀도록 호소할까요.’

총 : 행안부 장관이?

한 : 아니, 제가 행안부 장관하고 그렇게 의논했다구요. 그랬더니 행안부 장관이 무전기인가로 앞의 상황을 듣더라고요. 그러니까 그 경찰 답변이 ‘여기가 상황이 너무 삼엄해서 우리가 그렇게 나가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니까 시간을 더 봐야한다’ 이렇게 답변이 와서 일단 기다리고 있었죠. 그러고 한 시간이 지나고 어두워는 지고 그러니까 내가 결단을 해서 ‘제가 나가야겠다’ 생각을 하고 있는데 노건호 씨가 나갔더라구요. 생각이 같았던 거예요. 노건호 씨가 나와서 부탁하니까 그제야 사람들이 물러나게 됐어요.

총 : 타살설 주장한 사람들이 막았던 거군요. 타살설, 그런 얘기들 들으셨죠?
한 : 인터넷에서 봤죠.

총 : 근데 내부에서는 그런 얘기 없었나요?
한 : 없었어요. 왜냐하면 유서가 있었고. 또 떨어지신 이유를 문재인 실장이 그걸 다 추적을 했기 때문에 그건 아니었다.

이 대목에서 또 한참 침울해 했다.

총 : 경호원들 말 바꾸고 그런 와중에도 내부에서는 전혀 그런 의심은 없었군요?
한 : 네. 없었어요.

총 : 그리고 중계가 어디에서 끊겼냐 하면 화장하러 들어가서 끊겼어요.
한 : 아 그랬어요?
총 : 화장장에 들어가서 소각 시작 직전 화면이 끊겼는데 그 뒤엔 무슨 일이..

한 : 침통하기가 한이 없었죠. 저도 화장장에는 처음 가봤는데. 영부인과 가족들이 그걸 보면서 있을 수 있는 방이 있더라구요. 소파도 있고. 저도 그 안에 같이 들어갔는데. 앞 유리너머 관이 있고 그 관이 들어가는걸 보여줘요. 화장하는데. 오열하시죠. 몸을 못 가누시고 딸이랑 붙들고... 거의 못 걸으셨어요.

여기서 다시 한 번 눈시울이 젖었다.

그리고 이제 화장 돼서 나온 함을 노건 호씨가 안고 갔는데 그 날 저도 이제 정토원까지 갔죠. 그날 2시 30분인가 새벽? 아침 10시에 영결식하고 밤 꼴딱 새고 새벽 2시까지 갔는데 그게 이제 7일장이었잖아요. 그러보니까 7일 동안 잠을 다해서 한 10시간 정도 잔 것 같아요.

총 : 하루에 1,2시간.

한 : 네. 잠을 못 자죠. 새벽 5시에도 천주교 신부님들이 미사 드리러 수백 명씩 오시고 하면 가서 인사해야 하고. 거기 이장님 쪽방 하나 빌려서 자려고 했는데.. 뭐 잘 수가 없죠. 신체적으로는 극도로 견디기 어려운 상황이었는데 무슨 정신력으로 견뎠는지. 마지막 날 새벽 정토원까지 갔을 때는 너무나 극도로 피로하니까 차멀미가 나더라구요.. 그런데 봉하마을에 들어가니까.. 들어가면서부터 또 사람들이 촛불을 들고.. 그 깜깜한데 정토원까지.. 얼마나 많이 모여 있는지.. 소리치고 울고.. 그럼 제가 또 새 힘이 나서.. 새 사람처럼 돼서.. 그렇게 일을 했어요.

총 : 권 여사는 당시 보도로는 시신 확인하고 실신하셨다는 거 한 번 나오고 손님들 맞이하는 장면 한 번 나오고 영결식 때 김대중 대통령 마주보고 우는 장면 그리고 마지막으로 화장 직전에 쇼파에 주저앉는 장면. 그렇게 서너 장면 밖에 노출이 없었는데.. 원망도 있었을 것 같아요. 자연인으로, 한 사람의 아내로서 원망도 컸을 것 같은데.

한 : 영부인을 거기 가서 처음 뵈었을 때는 실신하신 후 거의 일어나지를 못하셨어요. 그리고 병원에서 집으로 오신 다음에는 그 방에를 못 들어가셨어요.

총 : 안 들어가셨다고요?

한 : 아니, 못 들어가셨어요. 그러니까 같이 주무셨잖아요. 방도 딱 하나에요. 같이 주무시던 방에 못 들어가시는 거예요. 이게 방이면, 여기 거실이 있어요. 그 거실에다가 방석 깔고 누워 계신 거예요. 얼굴은 형편없고 일어나지도 못하시고. 제가 가면 간신히 일어나셔서 얘기 좀 하고. 후들거리고 해서 아예 나오지를 못 하신 거예요.

총 : 안 나온 게 아니라 못 나오신 거다.

한 : 못 나오시기도 하고 사실 안 나오시기도 하고. 죽도 드리고 자꾸 수발을 해드리고. 그렇게 하다가.. 조금씩조금씩 회복 돼서 거실을 조금 걸으시고. 제가 처음 갔을 때 영부인에게 느낀 건.. 자책감이 너무나도 큰 거예요..

총 : 어쨌든 발단이 되었으니..

한 : 본인 자책감이 너무나도 커서 견딜 수가 없어 하시는 거죠. 그때는 아무도 만나고 싶지 않으신 거죠. 영부인 얼굴 한 번 보고 가려고 해도 아무도 만나질 못했어요. 그렇게 자책감이 크셨는데... 지금도 그건 마찬가지고... 지금도 그 자책감은 어떻게 지워질지 그것은 모르겠지만... 우리는 절에 가서 기도도 좀 많이 하시고 세월이 좀 가면...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영부인 힘내시라고 하니까 그런 얘기를 많이 전해드렸어요 제가.

사람들이 영부인 많이 보살펴 달라고, 힘내시라고, 그런 얘기 많이 한다고 전해드리고. 그리고 그 원망을 아무 앞에서나 막 하실 수는 없지만.. 제가 보기에.. 영부인의 이런 말씀에서 그런 걸 엿볼 수 있었어요. ‘아... 우리 아이들이랑 나를 두고 이렇게 혼자 갈 수가 있어요?’ 그런 얘기도 다른 사람 앞에서는 안 하시죠. (다시 한 동안 침울해하다 작은 목소리로) 원망도 마음속으로는 계시겠죠. 예..

총 : 노건호 씨랑 노정연 씨. 아들 딸은 어떻게?

한 : 노건호, 노정연 다 마찬가지인데.. 이런 얘길 많이 했어요. ‘아버지가 우리 때문에 그랬는데 우리가 잘못해서 그런 건데..’ 그래서 예를 들면 비석 만드는 문제나 화장을 하느냐 마느냐 현충원으로 가느냐 이런 문제가 논의될 때마다 ‘우리 때문에 아버지가 잘못 되셨는데. 이제는 무조건 아버지 말씀을 따라야죠.’

자기들 때문에 아버지께서 잘못 됐다는 것에 너무나도 아파하고 그랬죠. 그러면서 막 울고. 두 자녀들의 자책감도 너무나도 큰 것 같아요. 노건호 씨는 10월 중순경.. 미국으로 돌아갑니다. 전 직장으로. 권양숙 여사님은 앞으로 누가 와서 위로하고 아들이 옆에 있고.. 그런 것이 문제가 아니라 본인이 보람 있다고 생각하는 일을 하시도록 해야 해요. 지금은 추모공원에 시설관리재단을 만들었어요. 거기 이사장이신데. 그거 플러스 앞으로 노무현 정신을 계승하는 일을 만들어서 거기서 보람을 느끼신다면 아마 잘 극복하실 수 있을 것이다..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

총 : 장례 관련비용 정부 정산이 잘 되지 않았다고 보도된 걸로 기억하는데.

한 : 국민장의 경우 정부가 100% 부담하는 게 아니에요. 국장하면 100% 부담하지만. 저희들이 그 비용을 정산할 때, 예를 들어서 15억이 나왔다, 그러면 그 중에서 묘지 땅을 사는 것이랄지 그런 건 다 제외했고요. 그리고 사람들이 쓴 교통비 많을 거 아니에요, 먹는 것도 많고. 그런 걸 하나하나 꼼꼼히 따져 가지고. 이런 얘기해도 되나 몰라.. 우리는 이 비용 정산을 조중동에 낸다는 그런 생각을 하고 했다는.. 무슨 말인지 아시죠?

총 : 하하하. 알죠.
한 : 요만큼이라도 꼬투리 잡힐 것들은 전부 다 빼버렸어요. 그래서 우리 쪽 비용이 많이 생겼기 때문에 같이 일했던 사람들이 십시일반 내고.. 자발적으로..

총 : 얼마나 비었나요?
한 : 글쎄 확실히는 잘 모르겠어요.
총 : 그래도 억대일 것 아니에요.

한 : 한 2,3억 됐나? 그러니까 시민분향소는 시민들이 알아서 하고. 노사모는 또 자기들끼리 알아서 하고. 이런 식으로도 다들 알아서 하고. 그리고 또 49재까지 있었고. 그런 건 못 받거든요. 하여튼 비는 부분에 대해서는 자발적으로 십시일반 내서 모았어요.

총 : 정부에서 다 처리해 준 게 아니네요 결국은. 그렇게 생색내더니. 아~ 치사한 새끼들. (일동 폭소) 김대중 대통령 이야기로. 좀 짧게 하죠. 김대중 대통령과 사적으로 가깝지는 않으셨죠? 워낙..

한 : 그래도 가까운 편이에요. 이희호 여사님과는 아주 가깝고..
총 : 이희호 여사님이 말씀하시니까 영결식 당일 광장에서 ‘내 남편의 유지입니다’ 연설 들으면서 무슨 생각했냐면, 저 분이 직접 정치했어도 거물이 됐겠다..

한 : 아휴~ 전 김대중 대통령보다 더 대단한 분이라고 생각해요. 내가 여자라고 여자 편드는 건가.. (웃음) 김대중 대통령이 지하에서 섭섭하다고 하시겠다.(웃음)

총 : 하하하. 무슨 생각을 했냐면... 가려져 있었구나... 과거에 여성운동하신 지식인이란 건 알았지만 대중연설을 들은 건 처음인데 연설 듣고는 김대중 대통령 가시고 나서 본인이 직접 대중을 상대로 정치적 발언해도 괜찮겠다, 그런 생각을 했었는데. 어떤 분입니까?

한 : 아동특별총회라는 게 유엔에서 있을 때, 국민의 정부 때죠, 제가 여성부 장관 했을 때인데 2000년이었나, 같이 갔어요. 장관이 수행을 한 거죠 영부인 모시고. 그 때 같이 있으면서 당신이 결혼한 얘기 같은 것도 들려줬거든요?

총 : 재밌는 얘기 없나요? 김 대통령이 어떻게 꼬셨다 이런 거..(웃음)
한 : 근데 내가 봤을 때는 영부인께서 김대중 대통령에게 반한 것 같아요.
총 : 아, 그래요?

한 : 부산으로 피난 내려갔을 때, 써클 같은 게 있었나 봐요. 정치적인 뭐 그런. 지금 서영훈 선생님도 계시고. 김대중도 있었고.. 그런데 거기서 김대중이란 사람이 발표를 하는데 말을 하면 반짝반짝 했나 봐요. 잘 생긴데다 눈이 반짝반짝하고. 하여튼 독주를 하셨다는 거지. 어느 누구보다 앞장 서 가지고 말씀하시고 그렇게 하다가 피난 끝나고 서울 올라와서도 그게 계속 됐는데... 그래서 하여튼 자기는 ‘남녀 관계의 연애보다는 저 김대중이란 사람에게는 누군가가 필요하다. 누군가가 옆에서 도와줄 필요가 있는, 가치가 있는 사람이다.’ 이렇게 생각한 거예요.

부인 돌아가시고 그랬잖아요. 그리고 혼자 사시는데. 중개를 누가 섰는데. 본인이 의지를 가진 거지. 하여튼. 여사는 이화대학 졸업하고 서울대학 졸업했어요. 그리고 미국대학도 졸업하고. 그러니까 신여성 중에서도 최고 레벨의 여성이었고 집안도 짱짱해요. 그런데 애 둘 달린 홀아비, 고등학교, 상고 나온 남자하고 결혼한다니까 결혼식에 아무도 참석 안 했다고 해요. 그렇게 외롭게 했는데. 그런 장애를 뚫고 결혼했다는 그 결단만 보더라도 나는 이희호라는 사람이 참 대단한 사람이다.. 자기 내면적인 주관이 뚜렷해요. 그런데 그걸 함부로 표시를 안 해요. 중심이 딱 잡힌 사람이에요. 그게 또 어디서 나타나느냐.. 영부인 비서실장 했던 여성이 제게 하는 말이 ‘영부인은 대통령에 대한 복무정신이 철저하다’는 거예요.

총 : 김대중 대통령이 대단한 배우자를 만난 거네요.

한 : 대단한 배우자를 만난 거예요. 그러니까 자기 주관 뚜렷하고 자기 전문성이 뚜렷한 여성이 대통령이라는 한 인간, 아니지 대통령이기 때문은 아니지... 김대중이라는 한 인간을 통해서 자기가 실현하려고 하는 것을 소리 하나 없이 이뤄내는 거예요. 그러니까 김대중 대통령이 이희호 여사님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는 거예요.

총 : 존경하고.
한 : 진짜 존경한다고 그랬어요. 나한테는.
총 : 김대중 대통령이 이희호 여사를?

한 : 네. 존경한다고. 저한테. 그게 나이가 들수록 더 확실해 진다는 걸 느꼈어요. 이희호 여사의 ‘복무 정신’이 강하다는 건 뭐냐면 관저에서 사람들끼리 이렇게 의논하고 바쁘게 일하고 있는데 대통령님이 들어오시는 인기척만 났다.. 자기들은 비서인데도 인기척을 모른다는 거예요. 그런데 여사님은 어떻게 인기척을 알고 바로 나가서 맞이해 대통령 곁을 떠나질 않는다는 거죠. 그걸 복무정신이라고 표현하더라고요.(웃음)

총 : 그렇게 좋은가? (웃음)
한 : 그렇게 철저하세요. 철저하시고. 그리고 신앙이 깊으시고. 그리고 여성인권, 아동인권 등 인권 문제에 대해 대단한 전문성이 계실 뿐 아니라 언제나 마음에 두시고 계시기 때문에 그런 역량은 서로에게 스며들어간 것 같아요.

총 : 본인이 앞으로 직접 대중발언을 하고 그러진 않으실까요?
한 : 전 하실 수도 있다고 보는데. 꼬셔봐야지.(웃음)
총 : 그러셔야 할 것 같은데..

한 : 네.. 그리고 영부인이 골격미인이에요. 굉장히 골격이 뚜렷하고.. 굉장히 미인이신데..

총 : 미인까지는 제가 쫌..(일동 폭소)

한 : (웃음) 악수를 하면요. 악수 안 해봤죠? 악수를 하면요. 손에도 골격이.. 마르시면서도 골격이 뚜렷한 분이셨거든요. 요즘 좀 둥둥해지셨지만. 그 골격으로 손을 콰악 잡아요. 영부인과 악수하는 게 참 인상적이에요. 그래서 다들 기억해요. 그리고 그 악수에도 성의를 다해요. 그게 딱 느껴져요. 그리고 박수를 치잖아요. (흉내 내며) 박수를 치면 너무 독특하게 치세요. 이렇게..

총 : 북한식. 하하하..
한 : 박수를 칠 때도 어찌나 성의를 다해서 치는지. 사람의 성의와 진심과 이런 것들이 배어 있어요. 어떤 발언을 하셔도 무시당하지 않으실 거예요.

총 : 영결식 끝나고 광장에서 잠깐 시민들하고 만난 게 유일한 대중 접점이었잖아요. 이명박 정부가 시민들하고 접촉 없애려고 그렇게 한 건데.. 그 짧은 연설이 굉장히 인상적이었어요. 짱짱하고..

한 : 짱짱하죠. 청와대 내에서도 많은 사람 앞에서 말씀하실 일 많았거든요. 그런데서 하시면 정말 똑 부러지세요.

총 : 김대중 대통령마저 없는 시점에. 어른이 없는 이 시대에. 직접 스스로의 주장을 하셔도 김대중 대통령의 생각과 평생 결을 같이 했던 분이라 커다란 전달력, 파괴력 있을 것 같다.. 그런 생각이 강하게 들던데.

한 :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그걸 옆에서 보좌를 해드려야 되겠어요.
총 : 그러니깐요. 지금 이명박 대통령의 옆.. 아주머니가 나와서 그렇게 말하면 누가 듣겠습니까. (일동 폭소) 근데 이희호 여사는 본인 스스로 독립적인 한 사람의 정치인으로 나서실 의사가 없으신가요?

한 : (웃음) 그런 얘기 타진은 안 해봤어요. 근데 철저하게 first lady의 입장을 지키시더라고요. 이번에 병원에서 병간호를 오래 하셨잖아요. 날마다 이런 노트를 가지고요. 아침에 딱 가시면 화장 곱게 하시고 머리도 곱게. 언제나 그 자태가 있어요. 그렇게 하시고 정장 입으시고 타이트 스커트 입으시고. ‘아이고, 여사님 저 같이 바지 입으시면 피곤도가 절반으로 줄어요. 하루 종일 계시니까 그렇게 하시라고’ 그러니까 이러시는 거예요. ‘대통령님이 제가 바지 입는 걸 안 좋아해요’ 이러시는 거예요. 하하하. 그런 것까지 다 지키는 거예요.

총 : 그래서 복무정신.. 하하.

한 : 하하. 다 지키시고 노트에다가 아침에 가면 ‘한명숙이 왔다 갔다.’ 다 적어요. 며칠 몇 시에 왔다 갔고 이런 저런 말을 했다. 노트를 꺼내서 뭐하는지 봤더니 딱 그렇게 적으시더라고요. 일기를.

총 : 찰떡궁합이네요.(웃음)
한 : 똑같다니깐요.(웃음)
총 : 비슷한 사람들끼리.

한 : 그렇게 하시더라고요. ‘아휴~ 내가 대통령에게 너무 미안해요. 옆에 있어서 간호도 해드리면 좋은데.. 중환자실에 계시니까 간호도 못하고..’ 그게 아쉽다는 거.
총 : 아니 평생을 했는데도?

한 : 네~ 그거 40일인가 바로 옆에서 못한 게 너무 아쉽다고. 두 번째는 말씀을 한 번만 하고 가셨으면 좋았을 것을, 예를 들면 자식은 어떻게 하라든지, 나는 어떻게 하라든지. 그렇게 말씀 못하고 가셔서 그게 너무 아쉽다고. 그러고 퇴임 이후에 두 분이 그렇게 알콩달콩 살았어요. 퇴임 이전에는 감옥가고 편지 쓰기 바쁘고 모든 일에 항상 바빴는데 퇴임 이후에는 집에 들어와서 단 한 번도 떨어진 적이 없다고.

그렇게 알콩달콩 사시다 가시니까 뭐라고 하시냐면. 어떤 사람의 얘길 하면서.. ‘아휴. 그 사람은 참 좋겠어. 혼자 사니까.’ 음... 그냥 말을 해야겠다. 이길녀 여사라고 계세요. 경원대 총장. 이길녀 여사랑 박영숙 총재이랑 다 가깝거든요. 그러니까 ‘이길녀 여사는 참 좋겠어. 독신이니까. 혼자 사니까 이런 헤어짐의 아픔이 없을 것 아니냐.’ 너무 많이 힘들다는 표현을 그렇게..

총 : 그 분이 들으면 화나겠죠. 하하하

한 : 하하하. 그런 말씀을 하시고 그랬는데.. 그러니까 두 분 돌아가시는 경위가 다르기 때문에 그럴 수밖에 없는데.. 우리 이 영부인은 아직도 너무나 초췌한 얼굴로 계세요. 그리고 앞으로 1년 동안은 어디에도 안 나가시겠다는 거예요.

총 : 권..

한 : 네. 49제까지는 물론이고. 그런데 탈상하고도 1년까지는 아무데도 안 나가고 싶다고 그렇게 얘기 하시는데. 꼬시고 꼬셔 가지고 이번 9일 날 문화재 할 때 오긴 오시겠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렇게 하고 계시는데..

그런데 이희호 여사님은 영결식 끝나고 다음다음날 찾아뵈었어요. 점심을 같이 했는데. 보고 너무 놀란 게 똑~같아요.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이 똑~같이 곱게 화장하고 머리 얌전하게 하시고, 그 까만 옷도 예쁘게. 몇 개를 맞추셨나봐. 까만 옷을 이번에는 원피스로 요기(팔)는 싸악 비치고. 예쁘게 입으시고 그렇게 앉아 계시는 거예요.

아주 ‘이분 참 대단하신 분이다.’ 사람이 가고 나면 울기도 하고 무너질 거라 생각하는데, 전혀 흐트러짐이 없으신 거예요. 제가 보니까 아직도 김대중 대통령 당신과 같이 계신다고 생각하시는 거예요. ‘아휴~ 적적하시죠? 요즘 시간이 많으실 텐데 어떻게 보내세요?’ 그러면 ‘아니에요. 하나도 안 그래요. 할 일이 너무 많아요.’ 그러면서 지금 대통령님이 쓰시다 가신 원고 다 꺼내서 매일 읽고. 오히려 시간이 부족하다는 거예요. 그래서 너무 놀랐어요.

총 : 정말 똑같은 분들... 하하하.. 징한 양반들..
한 : 이 영부인이 88세거든요. 하~ 정말 대단한 분이에요. 그래서 제가 그 마무리를 보면서 처음부터 대단한 분이라 생각했지만 역시 대단한 분이시다. 앞으로 뭘 해도 하실 분이다..

총 : 다시 한 번 말씀드리지만, 이제 김 대통령 옆에서 역할 말고 본인 스스로 자신만의 역할을 하실 수 있을 것 같은데요.

한 : 그걸 우리가 권해 드려야 되는데. 이번에 사랑의 친구들이라고 늘 당신이 하시는 봉사.. 1년에 한 번씩 하시는 일인데 그걸 이틀이나 나오셨거든요. 봉사 그런 거는 하시고 싶어 하세요. 그런데 정치적 발언이나 그런 건 하실 지는 의문인데. 그런데 여사님께서 생각할 때 ‘아, 좋은 모임이다’ 하는 모임에서 좋은 말씀을 하실 수도 있을 거 같은데..

총 : ‘이명박 대통령은 나쁜 놈입니다.’ (일동 폭소)

한 : (웃음) 근데 그게 안 될 게.. 이번에 이쪽에서 국장과 현충원 내줬잖아요? 왜냐면 노무현 대통령 때 자기들이 경험을 했기 때문에. 그래서 여사께서 그런 것에 대해 고맙게 생각하시는 게 있어요. 잘 해줬다고.

총 : 저는 보면서 무슨 생각이 들었냐면. 잘 해치웠다. 이 이명박 정권 입장에서는.
한 : 잘 해치운 거지...
총 : 국장은 내줬는데 그 핑계로 자기네들이 하고 싶은 대로 다 했다..

한 : 방송도 막았어요. 뉴스에서만 하게 했지. 어느 날 누가, 우리 다 모여 있는데 들어와서. 어떤.. 기자한테 들었나 봐요. 우리 때 방송 때문에 너무 흥분했다고. 방송제한 한다고. 그 날 3시부터 방송 아무데서도 안 나온다는 거예요.

총 : 코스도 보니까 대중 접점 철저하게 없애려고 짰고. 예전에는 서울광장만 막았는데 이번에는 서울광장만 열었어요. 그것도 잠깐. 그리고 영결식 당일 날 행안부 초청 문자 받은 사람 이외에 유족들 초청 문자나 민주당 초청 문자로도 못 들어가게 하고.

한 : 그래요.

총 : 그게 박정희 영결식에 박근혜가 초대한 사람 못 들어가게 하는 건데..
한 : 국장을 하면서 공동위원장도 요청했는데 안됐어요. 국장하고 현충원 얻어내느라고 그런 것들을 그쪽에서 다 주관하게 되고 그리고 노무현 대통령 때 저쪽이 경험이 있다 보니까 철저히..

총 : 감정이입 안 되게 만들고..
한 : 응응.. 맞아요. 그런데 인제 사람들도 김대중 대통령은 천수를 하신 거니까. 대체적으로 예상도 있었고..
총 : 상대적으로 차분했죠.
한 : 네 그랬어요. 좀 달랐죠.




벌써 2시간 반이 흘렀다. 목 상태가 정상이 아닌 상황에서. 마무리를 할 시간이었다.

총 : 마무리로 친노 진영 이야기만 짧게 하죠. 영결식 끝나고 다들 모이셨을 거 아니에요. 한자리에. 그러면 당연히 그 자리에서 ‘앞으로 이렇게 하자. 저렇게 하자.’ 이런 얘기들 나왔을 테고. 친노신당 만든다는 이야긴 이미 그 이전부터 있었던 말이고. 그런 이야기들 나왔죠?

한 : 네, 나왔죠. 친노신당은 대통령 서거 전에 자기네들끼리 이미 준비하고 있었던 건데.. 노 대통령은 부정적이셨대요. 그러다 서거를 하신 건데. 그런데.. 당이란 건 그래요. 몇 사람이 하는 게 아니라 거기 또 참여하는 사람들이 많으니까 그 사람들의 의견을 반영해야 하니까.. 그걸 중간에 대통령님이 돌아가셨다고 해서 그칠 수도 없는 것이고. 그래서 진행을 하는데.

한 번 언론에 나온 거예요 그게. 49제 중에. 그래서 ‘이게 뭐냐. 지금 상중인데.. 이건 안 된다.’ 그런 이야기가 나오고. 저도 좀 반대쪽에 서고. 이해찬 총리도 좀 그러고. 대체적으로 분위기가 그랬죠. 그래서 일단 보류 아니 그니까 연기라고 해야 할까, 하여튼 우선 당장 논의는 안 하는 것으로 그렇게 되다가. 우리가 아무리 반대를 하고 말을 해도 그걸 하려고 하는 사람은 나름의 목적이 있기 때문에.. 새로운 당을 만들어야 한다는 자기들 나름대로의 확고한 목표가 있기 때문에 그걸 중간에 그만둔다거나 그럴 수 없다는 걸, 그때 확인했어요.

총 : 말리시는 입장이셨던 거죠?

한 : 저는 말렸죠. 아니 그러니까 하나로 가야한다는 거죠, 하나로 가야 된다. 우리가 하나로 가야한다는 것은 누구나 다 동의를 해요. 신당하려는 사람들도. 그런데 이제 기정사실화가 된 거죠. 자꾸 언론플레이가 되고. ‘그럼 기정사실화를 시키자. 우린 손대지 말자.’ 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그냥 가는 것이고. 그리고 시민주권모임이란 것은..

총 : 네. 그게 어떻게 다른 겁니까?

한 : 시민주권모임이라는 것은, 지금 신당 만든다는 사람들도 있고, 민주당에 있는 사람들도 좀 많이 들어와 있고, 그리고 제 3 지대에 있는 사람도 다 해서. ‘다 하나로 가자.’ 저도 민주당에 속해 있잖아요, 안희정, 백원우 다 속해 있잖아요. 그런 사람들 다 합쳐서 시민정치운동을 하자.

총 : 컨셉은 신당도 포함하고 민주당도 포함하고 시민도 다 포함해서 더 넓은 걸 만들자?

한 : 네 그리고 옛날처럼 오프라인으로만 시민단체처럼 하지 말고, 온라인 중심으로 그렇게 해보려고 지금 생각을 하는 거고..

총 : 그럼 시민주권모임이 결국 정당이 된다거나 그런 건 아닌가요?
한 : 네. 절대 아니고, 정당은 민주당에서 정세균 의장이 몇 달 전에 ‘우리가 한계가 있으니 제 2 창당 수준의 대통합이나 연합을 하겠다.’는 걸 던졌어요 그 때. 그러고 얼마 전에도 그런 얘기를 했죠.

총 : 신당 쪽에서는 그럴 의사 없다고 하던데.
한 : 네, 없다고 그러고 있고. 그 쪽에서는 민주당을 비판하고 있죠. ‘민주당으로는 안 된다.’

총 : 근데 논리적으로 일리가 있는 비판이잖아요.
한 : 그 쪽에서는 강하게 ‘민주당은 개혁의 의지도 없고, 개혁도 안 될 것이다.’ 이렇게..

총 : 기득권도 안 버릴 것이고, 지역 정당이고..
한 : 그런 이야기를 하는 것이고. 그런데 시민사회나 어떤 common part가 있어야 통합을 하든 뭐든 할 거 아니에요. 그렇지만 제가 볼 때는 빠른 시일 내에 그런 것이 형성 될 것 같지는 않고..

총 : 한동안은 따로 간다?
한 : 그러니까 뭐 예를 들면 선거 국면에서..
총 : 내년 지자체 같은?

한 : 예, 선거 국면에서 선거연합 이런 것을 통해서..
총 : 후보 단일화나 연합 공천이나..
한 : 네네 그렇죠. 지원이나 이런 걸 통해서 해 나가면서 ‘적절한 시기에 통합도 가능하지 않겠느냐.’ 그런 얘기죠.

총 : 총리님은 다 통합 되어야 한다고 보시는 건가요?

한 : 지금 당위성을 이야기 하는 것이 도움이 안돼요. 현실이 뒷받침을 안 해주니까. 민주당에서 정운찬도 접촉을 그동안 했다는 거 아니에요? 그리고 박원순도. 지금 떠오르는 사람으로는 정운찬, 박원순이 떠오르는데.. 아직 결단을 못 내리고 있고.. 그 외에..

총 : 정운찬은 뺏겼고..
한 : 정운찬은 가 버렸고.. 그 다음에 박원순은 어떻게 될지 모르고. 그 외에도 언론노조 사람들, 오르내리는 사람들이 기업인들도 있고 하나 봐요. 근데 그렇게 인지도는 큰 사람은 아닌 것 같고.

총 : 근데 친노신당, 국민참여정당. 사실 그 주장과 논리를 보면 예전 개혁당의 문제의식을 그대로 가지고 있고. 그렇게 따지면 유시민 장관과 맞닿는단 말이죠.
한 : 그렇죠. 시민광장. 시민광장 사람들하고..

총 : 그러면 유시민 전 장관도 그쪽으로 합류하게 될까요?

한 : 그 사람들은 유시민, 한명숙, 이해찬처럼 국민들이 알 수 있는 사람들과 결합을 해야 힘이 있다고 생각을 하죠. 그래서 지금도 이런저런 인터뷰에서 ‘한명숙도 올 것이다, 고려할 것이다, 이해찬 올 것이다.’ 얘기를 하고. 근데 신당에 합류할 것 같지는 않아요. 이 세 사람은.

총 : 앞으로도?
한 : 아마 합류할 것 같지는 않은데. 이 당이 굉장히 파괴력 있게, 국민적 희망을 받으면서 뜬다면.. 모르겠어요. 유시민 장관은..
총 : 가장 빨리 움직일 사람은 유시민 장관일 것이다?

한 : (고개를 끄덕이며) 지금 현재로는 합류 안 한다고 하고 있어요. 그러나 그렇게 뜬다고 하면.. 우선 당장은 조촐하게 이병완, 천호선 체제로 가는 걸로..

총 : 그럼 지금 시민주권모임에선 대표직을 관두셨잖아요.
한 : 아니 공동대표를 역할분담 한 거예요. 노무현 재단에서 이사장으로 역할 분담을 하고. 이쪽에선 공동대표로 되어 있었는데 제가 빼달라고 했어요. 두 가지를 다 못 하니까.

총 : 이해찬 전총리가 먼저 시민주권모임의 단독 대표로 이야기 되다가.. 총리님이 나중에 공동대표로..
한 : 아니 그게 아니라.. 둘이 같이..

총 : 처음부터?
한 : 두 총리가 해달라고 해서요. 그렇게 하다가..
총 : 처음에는 이해찬 총리가..

한 : 아니 거꾸로인데.. 근데 그건 중요한 게 아니고.. 두 총리가 공동대표를 해달라고 결정이 돼서 하다가 노무현 재단이 갑자기 그래가지고 저한테 넘기는 바람에..

한명숙, 이해찬, 유시민 사이의 역학을 알고 싶어서 굳이 물었다. 이 부분은 앞으로도 계속 물을 게다. 그들 모두에게.

총 : 친노신당은 말리셨는데 결국 발족했단 말이죠. 그럼 본인 입장에서 이상적으로 이 상황을 정리한다면.. 어떻게 되어야 하는 겁니까? 민주당과 시민주권모임과 신당의 관계가 어떻게 정립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인 구도인가요?

한 : 그게.. 이상적인 모델은.. 이제.. 다 통합이 돼서..
총 : 민주당으로요?

한 : 아니죠. 민주당으로가 아니죠. 민주당은 기득권을 버리고 와야죠. 그러니까 같이 다 통합이 돼서 새로운 게 하나 탄생해야 하는데,. 지금은 시대가.. 예전에 민주화 운동해서 민주주의가 10년 동안 발전하고 특히 노무현 시대에 촛불세대로 이동한 거잖아요. 온라인 세대가 지금은 시민 주권세대가 되고 이제 누가 하향식으로 내리누른다고 컨트롤되는 게 아니잖아요.

이명박 대통령이 지금 되는 것 같이 보이지만 내부적으로는 곪고 있거든요. 그러니까 시민주권의 시대가 왔다는 것을 민주당은 깨달아야 한다는 거죠. 옛날식으로 당을 운영하면 안 되고. 민주당은 많이 쇄신해야 된다고 봐요. 그럼 그 쇄신이 가능하겠는가. 기득권을 버리겠는가, 그게 문제인 거고.

그 다음 새롭게 형성되는, 예를 들면 시민주권은 당은 아니지만, 네티즌 연대랄지, 촛불세대랄지 이런 힘이 다 통합이 돼서.. 노무현 대통령이 회고록에서 ‘또 다시 영웅을 찾지 말라.’ 이랬거든요. ‘깨어있는 시민주권을 통해서, 시민들을 통해서 노무현을 극복해라’ 그게 그 분의 메시지라고요.

이제 어떤 한 사람의 지도력에 의해서가 아니라 ‘깨어있는 사람들이 다 자기 몫을 할 때 가능하다.’ 그런 시대로 전환하고 있다는 것을 나를 비롯해서 모두가 다 알아야 한다는 거죠 이제는. 그런 운동이 전 활발하게 전개되어야 한다고 보고 그것에 대한 가능성을 보고 있어요.

총 : 하지만 현실적인 주체가 존재해야 하는데. 민주당은 세가 있고 신당은 그 정당성은 이해가 가지만 현실적인 세는 없고.

한 : 신당도 하나의 세력이죠. 지금은 ‘민주당하고는 안 한다.’ 그러지만 우리가 민주당하고 둘이 하는 게 아니라 민주당도 하나의 세력으로 큰 틀에 참여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렇게 되는 시점이 있다면.. 같이 할 수도 있다고 저는 보고.

총 : 그때 시민주권모임이 그 틀에 하나의 기반으로 깔리고?

한 : 시민주권모임은 정당이 되는 건 아니에요. 시민주권은 그냥 시민운동이에요.
총 : 그냥 인프라 역할만 한다?

한 : 네 그렇죠.
총 : 그럼 결국 현실적으로 남는 건 두 당이지 않습니까?

한 : 하~ 그러니까. 당 대 당으로 보면 그렇지만 저는 당 대 당의 통합이 아니라 세력 대 당이 되어야 한다고 보는 거죠. 아까 제가 말씀 드렸던 그런 데서 젊은 사람들이 올바로 박혀 있고 행동이 수반되는 젊은 사람들이 하나의 세력으로 형성된다고 봐요 저는. 그러니까 이게 이상일 수도 있지만..

뭐 한명숙은 별건가요? 그냥 저도 시민 여성 운동하던 사람이었거든요? 그러다 경험을 거쳐서 여기까지 왔는데. 정치교육을 내실 있게 시민주권모임에서도 해야 되고, 노무현재단에서도 해야 되고, 다른 데서도 해야 되고. 그런 사람들 중에서 자꾸 훈련되고 발굴되어서 나와야 한다는 거죠.

총 : 신당도 있고, 민주당도 있고, 시민주권모임도 그렇게 시민사회를 교육하고 차기 정치신인을 육성하는 인프라가 되고 하는 구상은 알겠는데.. 현실적으로 이제 다음 지자체가 있고 그 뒤 대선 있고..

한 : 총선이 있고 대선도..
총 : 네. 총선, 대선으로 넘어가는데. 현실정치에 현실로 대처하려면 구심이 존재해야 할 텐데 그 모양이 어떻게 되어야 할까요? 그 그림이 그려지지 않으니까 지금 사람들이 누굴, 어디를 지지해야 할지도 모르는 건데.

한 : 아직은 그려지지 않았는데. 단시일 내에 앞에 닥치는 선거 준비만 급급하다가는 더 큰 것을 놓칠 수가 있다고 봐요. 그래서 조금 멀리 보고 그런 세력들을 모으는 역할을 해야죠. 그건 시민주권도 부분적으로 할 수 있고, 다른 쪽에서도 할 수 있죠. 현재 시민단체에서도 할 수 있고요.

총 : 민주당이 당을 해체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국고 지원도 받고 있고 국회의원도 속해있는 이 실체를. 결국은 민주당 중심으로 모일 수밖에 없는 거 아닌가요?

한 : 그러니까 단기적인, 지자체를 두고 생각하면 민주당 중심으로 갈 수밖에 없지 않느냐 하시는데. 물론 지자체 때까지 그런 통합작업이 다 이루어질 수 있을까 보면 시기적으로 만만치 않다고 봐요. 그렇기 때문에 그때는 시민사회 세력과 민주당과 또 야 4당이 있잖아요. 민노당도 있고. 그렇게 선거연합을 통해서 할 수밖에 없다.

총 : 지자체까지는 그렇고. 그 다음 총선, 대선에는 화학적 재결합?
한 : (고개를 끄덕이며) 그런 통합작업을 위해 저도 역할을 하고 싶은 거고. 어떤 역할이라도.

총 : 노무현 대통령의 유산을 크게 물려받은 몇 분이 있습니다. 총리님도 그렇고 유시민 장관도 그렇고. 그리고 어느 날 갑자기 문재인 실장이 사람들 눈에 들어왔고. 박근혜 전 대표가 가지고 있는 강점이 있잖아요. 비련의 주인공 같은. 마치 미국에서 캐네디의 미망인 재클린을 아무도 욕하지 못하는 것처럼.

지지자이든 아니든. 사심도 없어 보이고 사기 치지 않을 것 같고 약속을 지킬 것 같고. 그런 이미지, 그런 강점이 분명 존재하거든요. 그런데 제가 개인적으로 볼 때 박근혜의 그런 강점은 똑같은 위치에서 상쇄시킬 수 있는 이미지를 가진 유일한 사람이 문재인 실장인 것 같습니다.

한 : 성실하고..
총 : 네. 말수도 적고.
한 : 욕심 없고.

총 : 그래서 사람들이 궁금한 게, 문재인 실장이 과연 정치적 행보를 할 것이냐. 어떻게 보세요? 나올까요?

한 : 나오기를 바라는 게 우리들인데요. 문재인 실장님 본인이 정치를 안 하고자 해요. 넓은 의미의 정치는 하지만 선거에 나가고 이런 것은 고사를 하세요. 너무나도. 노무현 대통령이 전에도 권했다고 들었거든요. 그런데 안 하셨거든요. 본인이 정치를 잘할 수 없다고 생각하시는 것 같아요. 전에도 제가 얘기한 적이 있는데.

'저는 못 한다’고 그러시더라고요. 아주 최근까지도 그랬어요. (웃음) 미련이 너무 남아서 물어봤는데. 고사를 하고 있는데. 본인이 아주 강력하게 결심하셔서 절대 안 하신다는 것이 거의 확인이 됐는데. 앞으로 조금 더 해서 그 마음이 확인이 되면 너무 그분을 괴롭혀 드리지 않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총 : 가능성 제로인건가요? 조금씩이라도 안 한다는 마음이 약해지는 게 아니라?
한 : 조금조금씩 약해질 수도 있을 거예요. 그걸 노리고 있죠 우리는. (폭소) 근데 본인이 아직까지는 그래요.

총 : 하하하.. 오늘은 시간이 너무 많이 흘렀으니 그럼 본인은 어떻게 하실지 한 마디만 해주세요. 예고편으로.
한 : 저도 문재인 실장하고 비슷한 생각이에요. 닮았어요, 저도.

총 : 아니, 서울시장도 있고. 대선도 있고.
한 : 서울시장이나 대선 이야기는 있죠. 근데 제가 하는 게 아니죠. 다른 분들이 그러는 거지.

총 : 그럼 서울시장이나 대선이나 생각이 없으세요?
한 : 생각이 없어요 저는. 이제는 할 일을 다 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총 : 그렇게 마음대로는 안 될 텐데. 하하하.
한 : 피할 수 있을지 확실히는 모르지만.

총 : 마음은 안 하는 걸로 정했는데 어떻게 될지는 모른다..
한 : 도망을 가던지.
총 : 만약 둘 중에 하나를 해야 한다면 서울시장하고 대선하고?
한 : 아직 그런 생각 없어요. 앞으로 이렇게 이야기하면 되는 거죠?

총 : 네 오늘 인터뷰 잘 하셨습니다. 하하하..
한 : 포르노, 이런 거 물어볼까봐. 하하하
총 : 그건 나중에 준비되어 있습니다. 재밌게. 하하하.
한 : 저도 재미있네요. 하하하

실은 친노신당, 민주당, 시민주권모임, 민노당, 진보신당까지 그들 사이의 역학과 미래와 관한 이야기를, 날 세워가며 본격적으로 해야 할 차례가 되었지만 도저히 그녀를 더 이상 괴롭힐 수가 없었다.

하여 첫 번째 인터뷰는 여기서 다음을 기약하며 세 시간 만에 끝이 났다.



당시 그녀는 모든 회한과 분노를 꾹꾹 삼켜야만 했다. 그리고 그렇게 체내에 억지로 가둬야 했던 울분과 슬픔이 이제야 비로소 하릴없이 흘러내린다. 밥을 먹다가도 그냥 그렇게 눈물이 난다고 했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그렇게 가장 늦게야 울기 시작한 그녀에게 가장 먼저 새로운 이야기를 시작할, 마땅한 자격이 있는 게 아닌가...

자, 이제부터 시작이다.

기대하시라.

졸라.

- 뽕빨이너뷰담당 딴지총수
( chongsu@ddanzi.com )
 

by danbee | 2009/10/09 14:14 | 읽을거리 | 트랙백 | 덧글(0)

미디어법에 대한 유시민 강의

최근 국회에서 대리투표 문제 등으로 이슈가 되고 있는 미디어법에 대한 유시민 강의입니다.

미디어법이 왜 제정되면 안 되는지에 대해 알기 쉽게 잘 설명해 줍니다.


by danbee | 2009/07/27 10:32 | 읽을거리 | 트랙백 | 덧글(2)

[謹弔]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왜 그렇게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 밖에 없었을까?'라는 의문과 함께
또 다른 한편으로는 '오죽했으면 그렇게 밖에...'라는 생각이 듭니다.

정말 오죽했으면...

그리고 한가지 화가 나는 것은
그동안 그 분이 살아계실때 그 분을 물고 늘어졌던 언론과 방송들이
지금 그 분이 가시고 난 상황에서
그동안의 그 분의 행적 등을 살피면서 애도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우리가 보통 정치인들을 경멸하는 주 이유가
그들의 얼굴은 일반인들보다는 두꺼워
자신의 처지에 따라 이리 저리 말을 바꾸고
당선되기 위해서 온갖 각종 공약들을 내세우고는
당선되고 나서는 싹 얼굴을 돌려버리는 그러한 성향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우리나라 언론과 방송 또한 비슷한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 분이 살아계실 때
왜 유독 그 분에게만 도덕적으로나 모든 면에서 완벽함을 요구하면서
다른 사람들에게는 관대했던 그들이
이제 그 분이 가시고 나니
뒤늦게 이제 와서야
참여와 소통으로 우리나라 민주주의를 한단계 발전시켰다는 둥
권위를 다 내놓으신 첫 대통령이라는 둥
갖은 내용을 이제야 그 분을 찬양하고 있는 그들...

원망스럽습니다!!!

YTN에서 번외로 제작한 돌발영상으로,
평소 소탈하셨던 그 분의 모습을 볼 수 있는 동영상입니다.

그 분을 떠올리면서...

http://flvs.daum.net/flvPlayerOut.swf?vid=KDV85dy8XGY%24&ref=www.google.co.kr

by danbee | 2009/05/26 18:56 | 살아가는 이야기 | 트랙백 | 덧글(0)

오늘은 신나는 우리의 날

화창한 봄날 아이들 초등학교에서 운동회가 열렸습니다. 운동장에 도착해 보니, 역시나 하늘에는 운동회 상징인 만국기가 애드벌룬에 연결되어 펄럭이고 있습니다.

 

  
▲ 만국기 운동회를 알리는 만국기
ⓒ 강무정
운동회

 

그런데 자세히 들여다 보니 만국기 뒤편에는 그림이 그려져 있습니다. 아마 아이들이 손수 그려넣은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 많은 각국의 국기 하나하나에 아이들의 정성이 듬뿍 담겨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들이 사진에서처럼 하늘높이 떠 있어서 아이들의 정성을 확인할 수가 없었던 점이 아쉬웠습니다.

 

  
▲ 만국기2 그림이 그려져 있는 만국기
ⓒ 강무정
운동회

 

그런데 아이들의 작품이 여기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운동장 귀퉁이에 자리잡은 쉼터에도 아이들의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 우리들 작품1 만국기 뿐만 아니라 운동장 귀퉁이 정자에도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 강무정
운동회

 

이쯤되면 아주 그럴듯한 훌륭한 작품전시회 아니겠습니까?

 

  
▲ 우리들 작품2 그럴듯 하죠, 작품전시회가!!!
ⓒ 강무정
운동회

운동회 준비에 물론 선생님들의 많은 노력이 있었겠지만 아이들의 정성도 이만큼 들어가 있었던 것이죠.

 

출전문입니다. 각 학년 단체 행사를 위해서 출발하는 곳입니다. 그런데 그곳에 씌여진 문구가 마음에 와닿습니다. 비록 청팀과 백팀, 두 팀으로 나뉘어져 경쟁하긴 하지만 서로 함께 잘하자고 북돋아주는 내용입니다. 아이들이 그런 마음을 항시 가지고 친구를 먼저 배려해 주면 얼마나 좋을까요?

 

  
▲ 출전문 친구야, 같이 잘하자!!!
ⓒ 강무정
운동회

 

1학년 동생들의 박터트리기가 시작되었습니다. 노란색옷을 입은 막내동생들이 우르르 몰려나와 자기편 박을 먼저 터트리기 위해 자기편 박을 향해 힘껏 헝겊돌을 던집니다.

 

  
▲ 박터트리기1 모두 함께 힘껏 던져보자!
ⓒ 강무정
운동회

 

그러자 얼마 지나지 않아 드디어 박이 터졌습니다. 박이 열림과 동시에 "와아!!!"하는 함성이 터져나옵니다. 우리가 해냈다는 뿌듯함의 표출이겠죠...

 

  
▲ 박터트리기2 드디어 터졌다!!!
ⓒ 강무정
운동회

 

개인달리기가 이어졌습니다. 막상막하의 접전이 벌어집니다. 과연 누가 1등을 할까요?

 

  
▲ 달려다 달려1 막상막하
ⓒ 강무정
운동회

 

장애물달리기도 열렸습니다. 그런데 아이들 앞을 가로막는 장애물이 무엇일까요?

 

  
▲ 장애물 장애물달리기에 놓여져 있는 장애물입니다
ⓒ 강무정
운동회

각 학년별로 다른 것이긴 했지만, 우리집 큰녀석인 5학년의 장애물은 바로 콜라병 세우기입니다. 넘어져 있는 콜라병을 의자에 앉아서 손을 쓰지 않고 발로 세워야 합니다. 생각보다 쉽지가 않은 듯 합니다. 옆 친구들보다 먼저 하려고 서두르면 서두를수록 그게 뜻대로 잘 안됩니다. 아이들이 앞으로 자라나는 과정에서도 이런 장애둘들을 여럿 맞닥뜨리게 될 텐데, 그 때마다 슬기롭게 잘 극복해 나가길 바랄 뿐입니다.

 

  
▲ 장애물 넘어져 있는 콜라병을 자리에 앉아서 발로 세우는 것입니다
ⓒ 강무정
운동회

 

어려운 장애물을 잘 극복하고는 드디어 골인지점을 향해 힘차게 달려갑니다.

 

  
▲ 장애물달리기 장애물을 넘어서고는 드디어 골인지점을 향해!!!
ⓒ 강무정
운동회

 

그런데 초등학교 운동회가 예전과 달라진 것이 있었습니다. 우선은 운동회하면 가을운동회로 알았었는데, 지금은 5월 어린이날을 전후해서 열리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아이들 점심으로 학교에서 급식이 나와 학부모들이 아이들 음식을 준비할 필요가 없어졌다는 점입니다.

 

물론 지금도 운동회를 맞이해서 아이들이 신나하긴 하지만 정말 예전의 축제같은 분위기는 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아마 어쩌면 지금도 시골에서는 그럴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드는데 예전에는 농사일에 바쁘시던 학부모님들이 그 날만은 모처럼 아이들과 함께 하고, 아이들 또한 부모님들이 학교에 오셔서 자신들과 함께 한다는 생각에 정말 신나 했던 것 같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 날만큼은 부모님에게 장난감 이것저것을 사 달라고 떼를 쓰기도 했는데, 그렇게 아이들의 마음을 들뜨게 했던 것은 학교주변에 잔뜩 몰려든 상인들이 한 몫을 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지금이야 아이들에게는 장난감이 넘처나고 또한 엄마들도 교실 청소를 한다거나 학교 급식을 도운다는 명목으로 자주 학교를 방문하게 되어 학교에서 엄마를 만나는 것 자체가 신기하거나 기쁜 일이 아닙니다.

 

줄다리기가 벌어졌습니다. 정말 젖먹던 힘까지 다하여 열심히 줄을 잡아 당깁니다. 영치기 영차!!!

 

  
▲ 줄다리기 젖먹던 힘을 다해서, "영치기 영차!!!"
ⓒ 강무정
운동회

 

4월 마지막날에 춥지도 덥지도 않은 날씨라 운동회 하기에는 아주 좋은 날씨였습니다. 잔치의 주인공인 아이들에게나 오랫만에 아이들이 해맑게 웃으면서 뛰노는 모습을 지켜보는 학부모들에게도 안성맞춤의 날씨였습니다.

 

1년 열두달 중 어린이날까지 어른들에게서 아이들이 가장 대접을 받을 수 있는 시기입니다. 요 며칠만이라도 모처럼 아이들이 학업경쟁에서 벗어나 마음껏 뛰놀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by danbee | 2009/05/01 20:43 | 전자정부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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